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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세월호 인양에 즈음해, 3년 만에 보내는 편지

2017-03-23 18:03

조회수 :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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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편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나흘 후인 2014년 4월20일 늦은 밤 작성해놨던 글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써놓고 가지고만 있었다. 그게 좋을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의 생사가 불분명하던 시점이어서 함부로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유통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1000일이 넘는 기다림 끝에 수면 위로 드러낸 오늘, 그간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선생님께 보내드린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다.

선생님, 하늘에서 제자들과 이제는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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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20)

선생님, 12년 만에 인사드립니다.

박육근 선생님께.

세월이 참 빠릅니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지 벌써 12년이나 흘렀네요.

선생님, 저는 2001년에 경기도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2학년11반이었던 최한영입니다.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고 계시던 10반 바로 옆이었죠. 선생님께 수업(미술)도 들었다고 말씀드리면 기억하시는데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두근 반 + 세근 반’이라는 썰렁한 개그를 섞어 본인 소개를 하시던 것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수업 중 우연히 선생님의 수첩을 보게 되었는데 조금은 ‘기가 셌던’ 한 친구에 대해 ‘내면은 여리고 착한 친구다. 험한 세상 잘 헤쳐가야 할텐데’라는 걱정을 적어놓으셨더군요. 본인이 책임지고 있는 학생들에게 애뜻함을 지닌 분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이 남았습니다.

학년이 지나고, 졸업을 하고, 일상에 젖어 살다보니 선생님은 자연스레 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12년이 흐른 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선생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다름 아닌, 제 모교 인근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이후 실종자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그날 저녁, 고2때 담임선생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생님께서 단원고 2학년 부장님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요.

이후 오늘까지 계속 스마트폰으로 관련 뉴스만 찾아보게 됐습니다. 전 국민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게 며칠 간의 속절없는 시간이 지난 뒤, 오늘까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분명 학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선내 이곳저곳을 돌며 상황을 진정지키려 노력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배 안에 남으셨겠죠.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위로하며, 움직이면 위험하니 자리를 지키라는 선내 안내방송을 들으며 기다리셨겠죠. 배를 책임진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했다는 소식도 모른채요.

지금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계신 학생들, 그대로 져버리기에는 못다핀 꿈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돌아오시길.

지난 주 금요일, 퇴근길에 단원고로 향했습니다. 단원고 학생은 물론 인근학교 학생들과 근처 주민들까지 함께 나와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바라고 있더군요. 한 남학생의 가슴절절한 메시지 낭독 후, 선생님과 함께 단원고로 전근가셨고 제 원곡고 시절 선생님이시기도 했던 분의 한마디 한마디에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그분은 학교에 남아 학부모님들의 분노, 슬픔을 감당하고 계실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은 온 국민이 선생님을 비롯한 학생들의 무사생환을 바라고 있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상황은 조용해질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말도 안되는 상황 앞에서 며칠 간 멍하게 있는 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선장을 비롯한 일부 승무원의 직무유기, 정부의 재난대책시스템 부재,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한 소수의 미담은 마음 한구석에 치워질겁니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핑계로, 그렇게 무뎌질겁니다.

그렇기에, 남아있는 저희를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 그곳에서, 예전과 바뀔 것 없는 삶을 이어갈 저희들을 두눈 부릅뜨고 바라봐주세요. 용서는 절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야 저희들이 한자락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며 살겁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진행한 집회가 한 신문의 1면 사진으로 올라왔더군요. 한 학생이 종이에 써 들고 있던 문구로 이 글을 갈음할까 합니다. 박육근 선생님, 정말 보고싶습니다.
 
23일 오전 중국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의 선원들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해상 세월호 침몰구역에서 세월호에 고박작업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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