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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은

(피플)인호 교수 "각국 블록체인 기반 '전자화폐' 연구 활발…경제학 새로 써야 할지도"

"데이터 어떻게 얻느냐에 따라 4차산업혁명 시대 기업들 생존 달려"

2017-03-28 06:00

조회수 : 1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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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알파고 쇼크'를 겪은 지도 1년이 지났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체감도는 급상승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핀테크, 공유경제는 일상이 됐다.
 
집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가스밸브를 잠그는 건 이제 한물 간 이야기가 됐다. 국내 한 병원에서는 암 환자 처방에 인공지능을 활용했는데 암 환자들이 의사보다 인공지능의 처방을 더 신뢰했다는 '왓슨 쇼크'도 한 차례 지나갔다.
 
일상을 바꿀 주제는 또 있다. 바로 돈이다. 전자화폐 발행을 검토하는 중앙은행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를 현실화해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최근 독일에서 열렸던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디지털금융의 기회와 리스크'를 주요 어젠다로 선정됐다. 금융의 디지털화가 불러올 변화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선·후발 주자 간 격차가 유독 크게 나타나는 4차 산업생태계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은 이제 5년 남짓 남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4차 산업혁명의 뿌리기술로 '블록체인'을 지목하고 정부·산업계의 변화를 채찍질하고 있는 인호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기반기술로 활용되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 직전에도 생명보험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블록체인:보험산업의 파괴적 혁신과 엔진’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블록체인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블록체인이란 비트코인의 기반기술로 거래기록이 담긴 블록을 다수의 네트워크 참여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말한다. 현재의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달리 거래기록 조작을 위해서는 분산원장된 블록의 51% 이상을 조작해야 하기에 해킹에 따르는 보상이 낮고, 거래의 투명성과 익명성이 동시에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대학교에 벤처에 뜻이 있는 학생들이 모이는 소프트웨어 벤처융합이라는 전공이 있다. 창업에는 현장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턴 과정을 강조했다. 2014년 '코인플러그'라는 비트코인 거래소에 학생을 보내면서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생각할수록 신기했고, 비트코인이 갖는 의미가 뭔지 고민하게 됐다. 앞으로 금융시스템이 '디지털 머니'로 바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을 연구하는 사람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해 12월 서울에서 '인사이드 비트코인'이라는 세계적 콘퍼런스가 있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서 학교로 모셨는데, 학생들이 한 10명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다.
 
2015년 삼성전자 사장단 강의에서 말했던 'Unbundling of Bank(은행 기능의 분화)'가 언론을 거쳐 '은행이 해체된다'고 소개되면서 금융권이 뒤집어졌다. 이후 은행, 카드사 등 많은 금융회사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금융권에서 최초로 공대 출신 사외이사가 되기도 했다. 블록체인을 전략화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블록체인학회까지 설립하게 됐다.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의대 겸임교수를 맡아 스마트워치를 통해 조울증을 진단하는 연구도 하고 있는데 이게 결국 블록체인에서 만난다. '이런 DNA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의료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이런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개인 의료정보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하면 굉장히 불안하지 않나.
 
블록체인은 의료정보를 다 암호화해서 필요할 때만 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의료정보의 활용성을 높이면서도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
 
-블록체인 활용에 관한 법적 제도가 사실상 전무하다.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대신 관련 법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있다. 이 세 법을 줄여서 바로 '개망신법'이라고 한다. (웃음) 그런데 정말로 우리나라가 이 세 법 때문에 망신을 당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산업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실제로 제 스마트워치를 통해 모아지는 건강정보는 다 미국 기업에 쌓이고 있다. 그 기업은 이런 정보를 갖고 '아, 한국인은 수면이 부족하구나'해서 수면 관련 약이나 제품 판매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렇게 데이터 시장이 새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저는 '돈' 중심의 이코노미에서 '데이터' 중심의 경제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데이터를 어떻게 얻어내느냐에 기업의 생존이 달린 것이다. 디지털의 특성은 '승자독식'이다. 1등이 시장의 80~90%를 차지하고, 2등은 5~15%, 3등은 없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핀테크 등 기술적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나.
 
다행히 블록체인은 오픈소스다. 또 우리가 빨리빨리 잘 하지 않나. 그래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 와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역시 규제다. 실제로 신한은행이 스트리미라는 회사와 제휴해 2~3일 걸리던 해외송금을 10분 안에, 또 수수료를 기존의 10분의 1로 줄이는 서비스를 만든 적이 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오케이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불법이라고 했다. 만들고서 1년 넘게 쓸 수가 없었다. 조그만 회사가 1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면 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인 호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을지로에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각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화폐 발행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은행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 티머니 같은 카드나, 스마트폰에 포인트를 넣고 다닌다든지 하는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저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전자화폐를 해보자는 것이다. 연구가 잘 된다면 동전이 아니라 더 큰 금액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상당히 빨리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한 농촌지역에서는 농민들에게 창업 교육을 받도록 하고, 교육을 이수하면 40만위안(약 6500만원) 정도의 코인을 나눠준 뒤 실제 창업을 하게 하거나, 코인으로 월급을 주는 등 전자화폐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전자화 된) 위안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만약 한국 사람이 아파트를 사려는데 중국 은행에서 대출금리를 더 낮게 해준다면, 위안화를 순식간에 받아서 아파트를 사고 이자는 중국 은행에 내게 된다. 금융권 전체에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디지털의 파괴성은 국경을 초월한다. 처음에는 규제로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수요가 많아지면 법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 입지를 다지는데 (전자화폐 기술이) 활용되는 것은 아닐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통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전자화폐 시스템에서는 (모든 자금이 전자적으로 예치되기 때문에) 뱅크런(대규모 인출)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변화를 제일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학을 아예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디지털 화폐의 특징 중 하나가 용도를 특정해 프로그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우리가 400조원 예산중에 100조원 정도를 복지에 쓰는데 사망자에게 돈을 준다든지 하는 누수가 많다. 복지코인을 만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을 예로 들면 지급된 50만원이 구직을 위해 쓰이는지, 유흥비로 쓰이는지 아니면 카드깡에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용도가 정해진 디지털 코인으로 지급하면 부정사용을 줄일 수 있고, 관리비용도 절감된다. 온누리 상품권 같은 지역화폐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특히 기업들에게 말하고 싶다. 변화는 막는다고 오지 않는 게 아니다. 누가 빨리 적응하는지도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누가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판을 바꾸느냐는 것이다. 변화를 어떻게 다룰지 선택해야 한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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