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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두 번 듣고 싶은 영화, 히든 피겨스

2017-03-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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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천재라도 사회가 용인하는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나보다. 영화의 첫 시작은 이렇다. 흑인이자 여성인 세 주인공은 출근하던 중 자동차가 고장 나 길가에서 수리한다. 이를 본 백인 경찰이 다가오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순종적인 모습으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이들이 나사 직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친히 직장까지 에스코트 해준다.


백인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도착한 직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차별과 편견이 자행된다. 타부서로 첫 출근한 캐서린은 자신을 청소부로 착각한 직원으로부터 휴지통을 건네받고,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쓰기 위해 왕복 40분이 걸리는 거리를 뛰어다닌다. 공석인 슈퍼바이저 역할을 대신 하는 도로시는 정식으로 승진하길 원하지만 흑인인 탓에 좌절되고 메리는 백인 학교에만 있는 교육과정을 들을 수 없어 엔지니어라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똑똑한 여성들이 부당한 처우에도 아무 말 못하고 감내하기만 하는 태도에 답답해 몸서리칠 때쯤 울분에 찬 캐서린이 부장에게 한마디 한다. 왜 이리 자리를 오래 비우냐고 따지자 이 건물엔 본인이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고 말이다. 부장은 나사에선 모든 사람의 오줌 색깔은 똑같아라고 말하며 화장실에 붙어있는 유색인종 딱지를 떼어내버린다. 진작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러한 답답함을 상쇄시켜주는 것이 한스 짐머, 퍼렐 윌리엄스 등이 참여한 OST. 1960년대 대표하는 재즈, 블루스, 가스펠 등의 장르곡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만든다. 손가락을 딱딱 튕기는 소리, 빠른 비트, 흥겨운 코러스는 울다가도 미소 짓게 하고, 어깨가 아니면 발가락이라도 꼼질거리며 리듬 타게 만든다. 누가 봐도 좋은 작품이라고 칭찬할 <히든 피겨스> 리뷰 제목을 두 번 보고 싶은이 아니라 두 번 듣고 싶은영화라고 한 이유다.


영화는 세 주인공 모두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뤄내며 막을 내린다. 도로시는 IBM 컴퓨터를 다루는 프로그래머이자 관리자가 되고 메리는 소송으로 백인학교에 입학해 엔지니어라는 꿈을 이룬다. 캐서린 역시 부장의 도움으로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제한받았던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 하지만 찝찝하다. 약자들이 이뤄낸 성취로 다른 약자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바는 알겠으나 모든 약자가 이들처럼 사회가 용인하는 차별을 뛰어넘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캐서린의 부장과 같은 조력자가 없었다면 캐서린은 본인이 겪는 차별을 감내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여자가 엔지니어가 웬 말이냐며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메리의 남편, 캐서린을 자신들의 보조 정도로 취급했던 남성 직원들, 차별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수용하는 여성들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히든 피겨스는 두 번 보기엔 너무 찝찝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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