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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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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
(이정모의세상읽기)과학 TV에게 채널 1번을!

2017-04-21 06:00

조회수 : 3,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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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동네의 분위기는 예전 동네하고는 사뭇 다르다. 서로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눈을 마주치는 것도 피한다. 내가 먼저 인사하면 “이 사람이 부담스럽게 왜 인사를 하고 그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분도 계시는 정도다.
 
그런데 최근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내가 인사를 하면 “지난 번 TV 잘 봤습니다.”라고 답해 주신다. 나는 두 주 전에 KBS의 <명견만리>에 출연했다. 여성의 출산, 육아, 취업 문제를 살펴본 ‘여성들을 춤추게 하라’ 편이다. 이웃들은 내가 프로그램에서 한 이야기보다는 내가 TV에 나왔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지만, TV는 분명 우리 동네에서 큰 일을 했다.
 
TV는 위대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으로 취임한 후 시민들에게 쉽게 자연사라는 주제로 접근하게 된 계기는 <세계테마기행> 마다가스카르 편에 출연했을 때다. 모험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은 마다가스카르 편을 재밌게 봤고, 출연자가 자연사박물관장이라고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사박물관에 온다. 왔더니 그 사람이 있고 같이 따라다니면서 관람 안내도 해준다.
 
아이들은 특히 TV 출연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TV에 몇 번 나오면 ‘연예인’ 대접을 한다. “아빠,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아빠 얼굴 다 알아.”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이 중학교 3학년 때 한 말이다. 나도 안다. 내 얼굴은 중학교 3학년들에게 친숙하다. EBS 프로그램인 <한 컷의 과학>에 몇 차례 출연했는데 많은 과학 선생님들이 그 프로그램을 학교 수업시간에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TV가 위대한 것은 별 볼일 없던 나를 사람들이 제법 알아주는 사람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 아니다. TV의 위대성은 콘텐츠 전달력에 있다. 두꺼운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 칠판에 많은 양의 판서를 하거나 멋진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강의하는 것보다 단 10분 또는 40분짜리 TV 프로그램이 콘텐츠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재밌게 전달한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평균적인 독일 사람들은 <크놉호프(Knoff-Hoff)>라는 프로그램으로 과학을 만난다. 현세대 과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본 칼 세이건의 TV 프로그램 <코스모스>(1980년)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칼 세이건의 제자인 닐 타이슨이 진행한 리메이크 <코스모스>는 전 세계 180개 국에서 동시 방영되면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이제 TV의 시대는 지나갔고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그야말로 디바이스에 국한한 이야기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TV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로 콘텐츠 때문이다. 리메이크 <코스모스>에서 닐 타이슨 박사는 상상의 우주선 소티를 타고 우주의 시작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데, 애니메이션, 컴퓨터 그래픽, 위성사진 등 칼 세이건 시대보다 발전한 영상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없어도 재미있어서 가만히 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과학적인 지식과 태도는 슬그머니 시청자의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과학의 날이다. 1933년에 과학의 날 행사가 처음 시작될 때 모토는 ‘과학의 생활화’였다. 각 학교마다 과학의 날 행사가 열린다. 전국을 다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교사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과학은 여전히 어렵고 재미없다.
 
과학은 원래 그렇다. 각 잡고 앉아서 읽고 배워서는 과학을 익히기 어렵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이미 과학자가 되었다. 과학자만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과학이 되어서, 생활을 과학화하고 과학을 생활화하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흘러내리는 물에 콩나물이 자라듯이 과학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바로 TV다. 교사들의 그 모든 노력이 TV 프로그램 하나만 못하다. 과학의 생활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TV 채널을 하나 확보하는 것이다. YTN_Science라는 채널이 이미 있다.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영한다. 그런데 그 채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걸리면 시청할 뿐이다.
모든 IPTV와 지역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채널 1번은 비어 있다. 왜 비워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과학 채널을 채널 1번에 배정하면 어떨까? TV를 켜면 우선 과학 프로그램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TV를 켜는 순간 잠깐이라도 과학을 접하게 한다면 우리나라 시민의 과학 수준은 순식간에 높아지지 않을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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