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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박 전 대통령, '뇌물' 대신 '강요' 인정?

공범들 모두 자신에게 책임 떠넘겨…무거운 형량도 부담

2017-04-2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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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이 대선 직후 시작될 전망인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소송전략이 주목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비선실세’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와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채명성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 구속기소 전후 수차례 만나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부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은 낮다. 결국 뇌물혐의를 포함한 일체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무죄를 주장할 것인지, 현재까지 상당부분 혐의가 입증된 강요죄를 인정하고 갈 것인지가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범죄이기도 하지만 형이 무겁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형사 전문가들은 “박 전 대통령이 뇌물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사실상 승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뇌물죄 무죄 선고받으면 사실상 승소"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박 전 대통령의 뇌물액은 총 592억원이다. 뇌물수수 금액이 1억원 이상이면 특가법이 적용돼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된다. 하한선도 징역 10년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재판부가 형을 아무리 낮춘다고 하더라도 최소 7년으로, 집행유예 대상에서 제외된다. 혐의 18개, 뇌물액수 592억원으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혐의를 재판에서 입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날까지 선임된 변호인들이 유영하·채명성 변호사 둘뿐인 것을 보면 검찰과 특검의 공격을 방어하기가 사실상 벅찬 상태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강요죄를 인정하면서 뇌물죄를 적극 방어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형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법리상 뇌물죄와 강요죄 또는 직권남용죄가 동시에 성립하기 쉽지 않다. 이번에 뇌물죄로 기소된 사람들의 공략 포인트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 433억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먼저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재판에서 뇌물이 아닌 강요에 의한 자금 지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준 지원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수사단계에서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재단에 출연 자금을 건넸을 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입장은 앞으로의 공판에서도 유지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 등의 주장은 검찰의 기소 논리에 기초한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20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자금 의혹 등에 대한 1차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심부름꾼 역할을 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 재단자금 출연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강요·강요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봤다. 이후 뇌물여부를 수사했지만 특검 수사로 전환되면서 멈춰 섰다. 특검팀은 수사종료 기한을 하루 남겨 놓은 지난 2월27일 이 부회장과 최씨를 뇌물죄의 공범으로 기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도 공범으로 적시했다. 다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소는 결국 검찰이 했다.


이재용·신동빈 "강요받았다" 주장


그동안의 공판 상황을 종합해보면, 먼저 기소된 공범들 중 최씨를 뺀 대부분이 박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433억대 뇌물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치열하게 혐의를 부인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강요로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회장도 같은 전략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과 이들이 맞닿아 있는 유일한 접점이 ‘강요’ 혐의라는 점도 박 전 대통령의 소송전략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측과 연대 전략을 펼 개연성이 높다. 검찰과 특검의 주장은 두 사람이 가족 정도의 관계를 가진 경제적 이익의 공동체라고 보고 있다. 최씨에게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뇌물죄 또는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공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두 사람은 이런 관계의 성립을 깨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이경의 최진녕 대표변호사는 “우선 두 사람 모두 전부 무죄를 주장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뇌물죄 성립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를 위해서는 두 사람이 가족처럼 진밀한 정도의 경제적 이익 공동체라는 논리를 어떻게 깰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목표가 달성돼 강요로 가게 된다면 박 전 대통령은 ‘역정은 낸 적 있지만 강요의 고의는 없었다’는 논리로, 최씨 역시 ‘기업들이 알아서 지원금을 낸 것’이라고 주장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끝까지 무죄 주장 가능성 없지 않아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은 물론, 모든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는 “처음부터 모든 혐의를 부인해 온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으면서 뇌물 대신 강요를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보다 직접적인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죄 가능성을 들었다. 그는 “공여자로 기소된 이 부회장이 뇌물죄의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수수자인 박 전 대통령이나 최씨 역시 당연히 뇌물이 성립된다”며 “지금까지의 공판만 보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정황과 증거들이 많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실무자 선에서 했던 일이라 몰랐다는 취지로, 최씨는 자신이 삼성 등에게 자금 지원을 부탁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뇌물죄는 물론 강요·직권남용 혐의까지 부인할 것으로 본다”며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로 이른바 ‘고영태 녹음파일’이나 차은택씨 등이 관련된 증거물들을 집중적으로 제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집중심리를 통해 가능한 한 신속히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공판준비기일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재판부가 최씨 등 박 전 대통령의 공범들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기록 파악이 상당히 돼있기 때문에 아무리 늦더라도 5월 중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30일 오전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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