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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전직 정부관리 '국가비밀 사유화' 도 넘었다

송민순 전 장관, 개인회고록 때문에 무단공개

2017-04-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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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송민순 전 참여정부 외교부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주장한 ‘UN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이 결국 검찰 수사로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은 24일 송 전 장관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장을 검토한 뒤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이 결국 사법적 판단을 받게 되면서 그동안 암암리에 있어 온 전직 정부 관료들의 국가비밀 사유화에 대한 비판 역시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10월에도 논란 일파만파
 
송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참여정부가 2007년 UN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대한 입장을 북한에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회고록에서 북한에 의견을 확인하자고 주장한 사람으로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후보를 지목했다.
 
회고록과 관련해 송 전 장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여부 등이 본격적으로 문제된 것은 대선후보 2차 TV토론 다음날인 지난 20일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는 2차 토론에서 문 후보를 상대로 ‘UN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을 앞세워 집요하게 공격했다. 문 후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송 전 장관은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후보의 답변과 배치되는 ‘청와대 문건’을 공개했다. 그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서 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문서에 찍힌 로고는 청와대 마크다.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보실장이 20일 저녁 6시30분에 접수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서류 밑에 적혀 있다”고 문건을 설명했다.
 
"내것 아냐…외교안보실장 것"
 
문건에는 청와대마크와 UN결의안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적혀 있고, 하단에 "11.20, 18:30 전화로 접수 (국정원장->안보실장)"이라는 메모가 수기로 적혀 있다. 송 전 장관은 수기로 쓴 메모에 대해 “내 것은 아니다. 백종천 외교안보실장 글씨로 생각된다”며 “노 대통령의 호텔 방에 들어가니 ‘북한에서 받은 반응’이라며 내게 보라고 문서를 줬다”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은 해당 문건 입수한 경위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는 지난해 11월22일 송 전 장관의 회고록과 관련해 어떠한 비밀도 사용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송 전 장관은 청와대 문건 공개에 대해 "내 책에서 밝힌 내용을 문 후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주장해서 공개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그는 회고록 내용이 공무상 비밀 누설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다 감안하고 쓴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스스로 공개한 청와대 문건 때문에 송 전 장관은 형사처벌까지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 후보 측이 이날 고발한 혐의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혐의도 공무상 비밀 누설이다. 검찰도 이 부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송 전 장관은 해당 문건이 당시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 누설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 "보호 가치 있으면 국가비밀"
 
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보면 송 전 장관의 해명은 근거가 부족하다. 대법원은 2007년 6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공무상비밀 누설 등 혐의에 대한 판결에서 “형법상 공무상 비밀이란 반드시 법령에 의해 비밀로 규정됐거나 비밀로 분류 명시된 사항에 한하지 않고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적 필요에 따라 비밀로 된 사항은 물론 정부나 공무소 또는 국민이 객관적, 일반적인 입장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형사 전문가들도 송 전 장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번 논란에서 처음 형사혐의 적용 가능성을 지적한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통상위원회 위원장은 “해당 문건은 북한이 전화를 통해 한국에 구수로 의사 표시한 것을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로, 남북관계에서 비밀로 보호할 국가적 가치가 있는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송 전 장관이 해당 문건을 공개한 것이 대통령 후보검증이라는 공익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송 전 장관이 문서 자체를 공개한 목적은 자신의 회고록이 진실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적인 회고록의 진실성은 문서 비밀보호가치가 있는 직무상비밀을 공개해야 할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 없다. 공익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형법상 공익성·정당성 없는 행위"
 
또 과거 굴욕적 외교를 폭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당한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균형성, 보충성, 긴급성 등 요건을 다 갖춰야 하는데 송 전 장관의 경우 이런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히 대선을 불과 2주 정도 앞 둔 상황에서 특정후보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셈으로, 정당행위로 해석하기에는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이나 보충성 측면에서 무리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형사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했다. 국정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은 내용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국가 기밀로서 이 영에 따라 비밀로 분류된 것을 비밀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판례가 국가 기밀을 반드시 법령으로 정한 것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있고, 이 같은 사항을 송 전 장관도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보인다”고 말했다. 공안검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도 “설령 국가비밀이 아니라 할지라도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은 대통령기록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만큼 문건 자체를 공개한 송 전 장관의 행위는 신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송 전 장관 같은 전직 고위 관료들의 ‘국가비밀 사유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정부가 한미 위안부·사드·한미 FTA 문제 등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중대한 외교·통상·안보 정보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정부 고위관리는 그러한 정보를 사유화 하고 사적으로 이용한 것이 드러났다. 매우 개탄스럽다”며 “이런 행위에 대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송 전 장관이 국가비밀에 준하는 외교·통상·안보 정보를 얻는 과정에 개입한 사람들도 모두 철저히 조사해 상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지/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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