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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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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발 금융혁신)①막 오른 디지털뱅크, 은행 창구시대의 종언

'사람이 은행에 맞추던' 패러다임 종지부…'점포수=영업력' 이제 옛말

2017-04-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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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한때 '신이 내린 일자리'라 불렸던 직업이 흔들리고 있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뱅킹이 보편화 되면서 은행 창구를 지키는 뱅커(은행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업점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등장은 이 같은 지각 변동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24시간 365일 모든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전략으로, '사람이 은행 시간에 맞추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 전례 없는 디지털 뱅크의 등장에 기존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권역의 구분 없이 혁신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디지털뱅크 시대를 진단하고, 금융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 금요일 밤 12시, 야근을 마친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주말에 가야 하는 결혼식 두 곳이 생각났다. 하지만 생활비가 많이 나가 축의금으로 낼 잔고가 부족한 상황. 이씨는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케이뱅크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신분증을 촬영하고 24시간 콜센터 상담원과 영상통화를 하자 20분을 넘기지 않고 계좌를 만들었다. 추가로 지문인증을 거쳐 연 5.5% 금리로 3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한밤중에 바로 개설했다. 다음날 오전 결혼식장에 가는 길에 GS25 편의점의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카드 없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돈을 찾았다. 현금인출 수수료는 공짜였다. 못 가게 된 결혼식 축의금은 휴대전화 문자를 이용해 송금했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물어볼 필요 없이 문자창에서 그대로 ‘#송금 50000’을 입력해 현금 10만원을 부쳤다.
 
지난 3일 출범한 국내 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 이용자의 사례다. 케이뱅크는 시중은행의 자격으로 1금융권으로 첫 발을 내딛었지만, 기존 은행과 달리 은행 지점이 한 곳도 없다. 조회·송금뿐 아니라 계좌개설, 예·적금, 대출 등 은행서비스 전반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뤄진다.
 
특히, 케이뱅크는 지점 없이 24시간 365일 온라인으로 영업하는 100% 비대면 금융이라는 특징으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앞서 이씨 사례와 같이 낮 시간에 은행 창구 방문이 어려운 직장인들을 빠른 속도로 끌어들이고 있다. 영업 시작 2주 만에 가입자 수 2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수신액 2300억원, 여신액 1300억원을 넘겼다.
 
아직 출범하지 않은 카카오뱅크 역시 올 상반기에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금융시장에 발을 내딛는다. 카카오뱅크는 케이뱅크와 달리 모바일 단일 플랫폼을 이용한 서비스 제공으로 전문성과 차별성을 특화할 예정이다.
 
같은 시기, 1금융권에서는 씨티은행이 전례 없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씨티은행은 '디지털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현재 126개인 지점을 25개로 대폭 줄이겠다는 내용의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점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소비자들이 많은 서비스를 디지털 채널을 통해 이용(씨티은행은 95%)하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영업점을 지금처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씨티은행의 파격적인 실험이 미칠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에는 '오프라인 은행'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은행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실제로 목 좋은 자리에 은행 점포를 세우는 식의 공격적 영업으로 고객을 끌어 모았던 국내은행들은 점차 몸집을 줄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은행 직원 수·점포 수·자동화기기 수 등 은행 영업 근간을 이루는 3가지 요소는 모두 1년 전보다 급감했다.
 
작년 말 기준 은행 지점과 출장소를 포함한 국내은행 점포 수는 총 7280곳으로 1년 전(7445곳)보다 165곳 감소했다. 은행 점포는 2012년 7835곳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까지 5년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점포수가 줄다보니 점포에서 일하는 행원의 수도 감소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총 직원 수는 11만4755명으로, 1년 전(11만7023명)보다 2268명 줄었다. 2010년 2372명이 줄어든 이후 감소폭은 6년 만에 최대 규모다.
 
비용만 잡아 먹고 수익엔 큰 도움이 안 되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자동화기기도 대폭 정리되고 있다. 은행 자동화기기는 2012년 말(5만5948대) 이후 줄기 시작했으며, 작년(4만8474대)에는 2641대나 줄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금융거래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은행 점포를 찾는 고객이 줄고 있는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영업력의 상징이었던 점포가 시간이 갈수록 은행의 고정비 부담을 키우는 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점포 감축은 점차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산업단지나 신도시를 중심으로 점포를 개설하고 있지만, 줄이고 있는 점포 수를 고려하면 전체 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회의론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1년 이후의 모습이 궁금하다"며 인터넷은행의 리스크관리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경섭 농협은행장도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온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인터넷은행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리지만, 은행권에서는 인터넷은행 등장에 따른 금융 혁신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시점에 인터넷은행이 등장해 금융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며 "기존 은행들의 혁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수십년간 지켜왔던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은행의 등장에 맞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변하지 않던 근무체계를 바꾸는가 하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모바일뱅크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번잡한 거래 절차와 영업시간 제한 등과 같은 기존 시중은행의 영업행태에 질린 고객들이 인터넷은행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영업점 창구에 앉아 이자나 수수료만 챙기는 방만한 영업행태가 한계점에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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