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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독서)일본 데카당스 대표작가의 단편집

다자이 오사무 ‘개를 키우는 이야기·여치·급히 고소합니다’

2017-05-10 15:33

조회수 :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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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는 이야기'란 제목에 낚여 책을 집었다. 귀여운 강아지나 애견 주인의 고충 등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했다. 책 첫 장을 읽는 순간 그 기대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 여치· 급히 고소합니다’는 일본 데카당스(퇴폐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이다. '몰락기' 문화 속에서 꽃핀 기괴문학 답게 자연미의 거부, 인공적 스타일의 색채들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3편의 단편에도 각각의 화자가 고백적인 어투로 인간이 느끼는 굴욕과 수치심, 죄의식 등 다소 읽기 불편한 듯 하면서도 현실을 모순적으로 비추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는 언젠가 개에게 물린다는 확신을 품은 한 남자의 내면을 그려낸 소설이다. 평소 정강이 보호대와 팔뚝보호대, 철모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품는 그는 개에 게 ‘선천적인 반감’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포치란 이름의 어린 강아지가 따라와 그의 집에 눌러 앉는다.


그는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벼룩약을 뿌려주고 부드럽게 음식을 삶아준다. 하지만 그건 강아지가 귀여워서가 아닌 공포심으로부터 비롯된 위선이다. 도쿄로의 이사를 핑계로 포치를 버려두고 도망가려거나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는 남자의 모습은 한 없이 비굴하고 파렴치하게 그려진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이 개를 깜박 잊어먹은 척 이대로 여기다가 내버려두고는 일찌감치 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나버리면 설마 제 놈이 사사고 고개를 넘어 미타카 마을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포치를 버린 것이 아니다. 데리고 가야 될 것을 깜박 잊은 것뿐이다. 그러니 죄가 될 리 없다. 또 포치가 우리를 원망해야 할 까닭도 없다."


‘여치’는 바보처럼 순수했지만 점차 돈과 명예욕에 휘둘리는 한 화가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당신이 무섭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아마도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처럼 살아가는 게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교만과 위선 등 점점 본질에서 벗어나는 남편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부조리에 대한 내면으로부터의 반기와 외침이 담담하게 묘사된다. 급기야 방송에 나와 구역질에 가까운 인사말을 할 때 아내는 하루 빨리 남편의 신화가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눕는다. 그때 툇마루에 있던 여치의 작은 울음소리가 파고들어온다.


‘급히 고소합니다’는 자신의 스승을 죽여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다. 나이가 같지만 혹독하게 자신을 부려먹고 조롱하는 그를 남자는 증오한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어린아이처럼 욕심이 없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칭하는 등 마음 속 미묘한 갈등도 드러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남자의 정체는 일반적으로 배반자, 변절자로 알려져 있는 가롯 유다.


"녀석은 고작 은화 삼십 냥에 팔려간다.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겠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추호도 사랑한 적이 없다. (중략) 예, 말씀드리는 게 늦었네요. 제 이름은 상인 유다. 헤헤, 가롯 유다입니다."


단편 3개로 엮여진 책은 출판사 책읽는고양이가 ‘단편소설에서 나다운 삶을 찾는다’는 콘셉트로 기획했다. 10편 내외를 묶어 볼륨감 있게 구성하는 책들과 달리 1~3편 정도만을 편집함으로써 책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여백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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