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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카드뉴스)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3가지 진실

2017-05-17 17:11

조회수 : 10,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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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많은 학자와 인권활동가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전환점으로 평가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하지만 지금까지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많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대표적 의문점들을 통해 진실을 보고자 합니다.
 
1. 시민들은 왜 총을 들었나
 
5·18 민주화운동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전국 학생 연대가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이자 신군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군과 등교를 저지당한 전남대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학생들은 ‘계엄 철폐’, ‘휴교령 철폐’를 외치며 금남로로 나갔습니다. 계엄군은 곤봉, 군홧발, 개머리판 등으로 폭력진압하고 무차별 집단발포 했습니다. 시민들은 폭력에 맞서기 위해 경찰서와 예비군의 무기고를 열어 무장한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무정부상태에서 수많은 총기가 풀렸음에도 은행, 금은방, 슈퍼마켓 하나 털리지 않았고, 총격전으로 발생한 부상자를 위한 헌혈 행진이 이어졌으며, 도시가 고립되어 물자가 부족해지자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북한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 매도당하게 된 배경
 
80년 2월 중순 신군부는 ‘언론대책반’을 설치해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발생한 사건의 진실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간첩단의 소행이라 거짓 보도 했고 계엄군의 폭력은 숨긴 채 시민들의 폭력적인 모습만 보여줬습니다. 전화는 물론 광주로 들어오는 육로가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광주의 진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3. 전두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무관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95년 5·18 특별법제정에 따라 검찰은 전두환씨를 전격 구속했습니다. 97년 대법원은 5·18 광주 유혈 진압을 국헌 문란 목적으로 진행한 내란으로 규정하고 전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8개월 뒤 김영삼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 됩니다.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는 그의 태도는 정당성 없는 사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민주화운동 당시 암매장 문제, 헬기사격, 지휘체계에 관한 실체적 진실 등이 반드시 규명되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제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이향 기자 lookyh8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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