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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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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경제자유화·민주화를 넘어 경제정의를 세우자

2017-05-23 10:34

조회수 : 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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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아메리카 호피 인디언들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고도 비가 오지 않으면 추장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던 야만의 시절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어디 추장 탓일까. 아무리 문화라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추장을 상징 조작의 희생물로 삼았었다. 국가 최고책임자에 대한 추앙보다 비난의 역사가 더 길었던 현대 정치사를 반추할 때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여 기분이 좋다.
 
문재인정부는 경제개혁의 기수들을 투 톱으로 기용해 정경유착과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경제민주화의 투사들이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만으로 일자리가 생기고 양극화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우리 살림살이가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제민주화가 안고 있는 신기루와 한계를 적시하고 경제정의를 대안으로 주장한다.
 
먼저 경제민주화가 안고 있는 신기루를 짚어본다. 우리 헌법(제119조제2항)에서도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사실 이는 정부가 시장에 규제와 조정 등 개입을 하려고 했던 명분에 불과하다. 민주화를 주체와 객체로 구분하면 경제민주화의 실체가 드러난다. 민주화의 객체, 즉 대상이 재벌, 대기업이라면 소액주주와 중소기업인, 영세상공인, 농어업인, 노동자, 비정규직 등은 민주화의 주체가 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 간의 항쟁에 정부가 끼어들어 규제와 조정을 하겠다는 뜻이 된다.
 
정부 개입은 관치경제이지, 민주화라고 말할 수 없다. 헌법(제119조제2항)에는 민주화를 위해 정부가 규제하고 조정한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입이 심화될수록 민주화가 성숙한다는 이상한 모순에 이른다.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자면 규제와 조정보다는 헌법(제119조제1항)에 따라 시장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게 옳다.
 
역대 정권은 경제자유화 또는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실상은 규제만을 일삼았다. 서비스산업과 재정·금융 등에 관한 법을 보면, 자유와 민주는 간 곳 없고 규제와 조정만 남아 있다. 기업 국유화와 공유화는 여전히 헌법에 살아있다. 농경지가 남아도는 데도 농지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규제를 받는다. 소작농을 금지하면서 위탁농을 허용하는 모순도 보인다. 우리 경제정책의 실상을 살펴보면 민주화는 규제를 엄호하기 위한 명분이었고, 자유화는 신자유주의를 남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조정을 강조한 정부든, 시장을 강조한 정부든 어쨌든 정부기 시장에 개입하는 게 당연시된 나라다.
 
신자유주의를 숭배한 시장은 신자유주의를 남용했다. 사회 안전망을 방치했고 국민들에게 자기실현의 공정기회를 부여하지 못했으며, 때로는 박탈했다. 기업은 고용보다 해고의 자유만을 누렸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력하기는커녕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골목상권까지 침해·석권함으로써 경제민주화의 주체들이 대기업에 등 돌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갈수록 강화되는 규제 속에서 산다.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의 파급효과가 일상의 삶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다. 취업의 전제가 되는 학력과 자격들도 실상은 규제다. 가령 특정한 신분에 국한해 안마사를 허용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안마나 마사지 산업은 기형으로 치달았다. 규제는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법에 자격제한형이 따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특별법들이 행정형벌에 자격제한을 함께 매김으로써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자격제한을 동시에 매기는 것은 이중처벌이다.
 
일제의 식민통치 이후 무너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국민들은 모든 급부를 정부에 맡긴 나머지 경제민주화와 노예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공동체를 표상한 노동조합은 정규직들만의 리그를 펼치면서 공동체정신을 실천하지 못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정경유착을 낳고 불공정을 야기하는 것은 부정의일 뿐이다. 정부는 시장이나 공동체가 협력하지 않고 불공정에 빠질 때 개입, 형평을 실현할 책무를 진다.
 
문재인정부는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경제정의'를 실천할 때다. 경제주체들 간 평등과 형평이 실현된 상태가 경제정의다. 경제에서 평등은 조건이 같은 주체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고, 형평은 조건이 다른 주체들을 다르게 처우하는 것이다. 각자에게 그 몫을 주는 정의의 원리를 경제에 실천하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닌 경제정의다. 정부가 모든 급부를 책임지면서 정부 개입이 일상화됐던 행정국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장과 공동체에게 각자 몫을 주고 자율에 맡기는 것이 경제정의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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