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권력 남용해 사익 추구"vs"추론·상상에 의한 기소"

박 전 대통령,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 유지…40년지기 최순실씨와는 눈도 안 마주쳐

2017-05-24 10:08

조회수 : 825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후 53일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첫 재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 옆에 앉았으며 정면만 응시했다. 곧이어 들어온 최순실씨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참여 재판을 받겠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23일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을 오전 10시부터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36분쯤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해 9시19분 서울법원종합 청사에 도착했다. 40년지기 최씨와는 재판 시작 전까지 철저히 분리돼 법원 내 구치감에서 대기했다. 취재진의 카메라와 150석의 방청석을 가득 채운 인파에 눈길을 주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았다. 재판부는 공판 초반에 2분쯤 촬영을 허가했으며, 박 전 대통령을 ‘박근혜 피고인’이라고 불렀다.
 
특별수사본부 소속 이원석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모두진술에서 “이 사건은 대통령이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관계를 맺어온 최씨에게 국가의 각종 기밀 등을 사사로이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도록 하고, 권력을 남용해 기업들로부터 거액을 출연받아 뇌물 수수를 하는 등 사익을 추구한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것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면서 “한편으로 대통령 위법행위에 대해 사법절차 영역에서 심판이 이뤄져 법치주의 확립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모두진술에 이어 44분 동안 이어진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이 끝난 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총 18건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사실을 일부 낭독하는 건 공소장 일본주의와 무죄 추정원칙에 반해 심히 유감스럽다”며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됐다”고 반박했다. 유 변호사는 뇌물수수 동기가 없고 공모관계가 공소장에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받아내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재단의 돈은 관계 정부 부처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데, 스스로 쓰지도 못할 돈을 왜 받아내려고 재단을 만들었겠나"라고 되물었다.
 
최씨는 롯데·SK 뇌물요구 혐의 등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 발언기회를 얻자 울먹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을 여기(법정)에 나오게 한 것이 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절대 뇌물이나 이런 것을 갖고 나라를 움직이거나 기업에 그런 것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검찰이 몰고 가는 행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기업들의 연결고리 자체를 몰랐으며, 미르·K 스포츠 재단을 통해 문화·체육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옹호했다. 그는 검사들을 겨냥하며 “한웅재 검사가 박 전 대통령 축출을 결정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 간부들의 ‘돈 봉투 만찬’사건을 두고도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로 언론기사를 제출한 것을 문제 삼으며 “박 전 대통령 사건 논리를 검찰에도 적용하면 사건 당사자들에게는 부정처사 후 수뢰죄를 적용해 얼마든지 기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사가 아니라 언론보도를 기반으로 기소가 이뤄졌다는 비판에 대해 "법정은 언론기사를 증거로 삼고 사실관계를 특정하는 정치 법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인 피고인은 수사할 때 현직이었는데 여론과 언론기사로 고소할 수 있겠냐”며 법과 원칙, 증거에 따라 사실관계를 판단하고 기소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뇌물 사건을 29일부터 병합해 심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소추권자가 특검이든 일반 검사든 적법하게 구공판에 기소된 걸 병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기존에도 특검 기소 사건에 일반 사건을 병합, 반대로 일반 기소 사건에 특검 사건을 병합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중기소에 해당한다는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의 주장대로 실체적 경합을 적용할 경우 일반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어서 이중기소가 아니며, 상상적 경합도 공소장에 누락된 것을 보충하는 취지로 판단한 판례를 들며 공소기각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현실적인 면도 재판의 병합 이유로 삼았다. 두 사건을 따로 심리하는 경우 중복되는 많은 증인을 불러 같은 진술을 이중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중 수고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신문절차를 통해 관련된 피고인과 변호인이 모두 모여 증인신문을 진행하면, 별도 신문 시 생길 수 있는 증인 진술의 모순점도 방지할 수 있어 원활한 심증 형성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특검에 대한 증인 진술이 일반 사건에도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합 사건은 하나의 절차 안에서 심리가 이뤄지고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 결과는 병합 피고인 모두에 대해 증거로 사용된다"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뇌물수수 공소사실이 완전히 일치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하나의 절차 안에서 특검이 신문한 증인신문 결과는 병합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당연히 효력이 미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친동생 박근령씨와 그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법정 문앞에 도착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 가족 등 피고인 관계자들을 위한 자리가 배정돼있지만, 미리 변호인을 통해 요청하지 않아서다. 박씨는 취재진을 만나 “(박 전 대통령의) 민낯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흉악범도 아니고 중죄자도 아닌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보장돼 있는데 엮여서 여기까지 오신 것을 보면 당사자의 마음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다”며 “머리라도 하실 수 있도록… 공인으로 사는 분들은 그런 것이라도 허락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스스로 올림머리를 해 다소 헝클어진 모습을 보였으며, 화장기 없는 모습이었다.
 



첫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로 탄핵된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그의 40년 지기이자 국정농단 사건 핵심인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