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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킥복싱과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 없는 사회>

2017-05-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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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는 중국 무술 영화의 전성시대였다. 아빠와 나란히 TV 앞에 앉아 이연걸, 성룡, 주성치의 영화를 섭렵했던 나는 무술에 대한 동경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 소림사에서 봉술 정도는 익히게 될 줄 알았는데 합정역 어느 사무실에서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다. 아쉬운 대로 근처 체육관을 등록했고 복싱을 배운지 두 달이 됐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간 덕분에 잽, 어퍼, , 위빙 등 기본 동작은 거의 익혔다. 그런데 근력이 부족해 펀치에 힘이 없다. 코치가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쳐보라고 해도 소용없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킥은 튼튼한 하체 덕분에 그나마 좋은 무기가 될 것 같다. 언제 시킬지 모르는 스파링을 위해 킥을 열심히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어른 없는 사회>를 읽게 됐다.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인 <어른 없는 사회>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40년간 합기도를 수련한 무인(武人)이기도 하다. 그는 무술은 상대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 더 강한지는 무의미하다. 무술이 기르고자 하는 것은 살아가는 힘이고 그 힘은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잘 수 있는 생명력을 높이는 능력이다. 비교대상이 있다면 어제의 나뿐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잠을 잘 자고 소화를 잘한다면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무술관(武術觀)뿐만 아니라 무술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인상 깊다. 그는 개인적인 생활공간을 합기도 수련과 철학 강의가 이루어지는 개풍관’ 2층에 배치시켰다. 도장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제자들과 스키를 타러 가기도 하고 온천 여행도 간다. 가족이 해체된 시대적 상황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필사적인 젊은이들이 서로서로 폐를 끼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힘’, ‘연대하는 힘을 기르게 하고자 함이다.


나는 왜 두 달 동안 복싱을 하면서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무술을 익혀 싸움이 났을 때 상대방을 이겨먹겠다는 못된 목적을 가졌던 것에 반성한다.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남정네들을 몰래 훔쳐봤던 것도 반성한다. 오늘부터는 킥을 배우고 주짓수까지 열심히 익혀 나이가 들고 철학이 생겼을 때 개풍관같은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운동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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