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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피플)"데이트 폭력범, 애정보다는 형사처벌이 더 필요"

"사적 공간에서 주로 폭행, 입증 힘들어…조기에 헤어져야" 단순폭행으로 보는 법조관행 문제 커…클레어법 도입 필요

2017-05-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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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연인에게 폭력을 당한 사람은 4만여 명. 이 중 467명이 사망했다. 친밀한 사이의 폭력이다 보니 은밀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가해자 20.4%가 1년 이내에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관련법 제정과 피해자 보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젠더폭력방지 공약을 내놨다. 전담기구를 마련해 데이트폭력·스토킹·디지털범죄 등 신종 젠더폭력방지 대책을 세우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책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젠더폭력 피해자들 사건 수임률이 높다. 삼성전기 재직 시절 직장 내 성희롱을 공론화하고,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배상을 받아냈다. 피해자였던 경험이 피해자와의 거리를 줄이는 매개가 됐다. 이 변호사에게 데이트 성폭력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관해 물었다.(편집자주)
 
-데이트 폭력 기준이 무엇인가
 
애정에 기인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언어적, 성적 폭력이다. 여자가 밀치고 때려도 폭력이다. 대개 여자의 폭력은 때려도 연인관계가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나오며, 남자의 폭력은 힘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나온다. 결국 남자는 물리력, 여자는 상대의 감정이라는 권력 문제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강력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범죄가 증가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 거다. 신고율이 전보다 높아져서 데이트 폭력이 늘어난 것 같이 느낀다. 어렸을 때만 해도 길에서 여자 때리는 남자를 계절에 한 번쯤은 목격했다. 그러나 요즘엔 남들 앞에서 때리면 잡혀간다는 인식이 생겨 그나마 신고가 이뤄지고 회자돼 많아 보이는 것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때리다 보니 입증이 잘 안 돼 피해자가 더 힘들어졌다.
 
-데이트 폭력이 살인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재범률도 다른 폭력 유형에 비해 높다.
 
모든 폭력은 가속된다. 한번 때려서 문제가 안 되면 다음에 더 때리고, 점점 마음껏 때린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더 때리다가 죽인다. 친구가 날 때리면 다시는 안 만나고, 가게 주인이 폭언하면 그곳에 다시는 안 가면 된다. 데이트 폭력은 계속 만남이 이어지기 때문에 폭력이 이어진다. 신고하고 빨리 헤어지면 안 죽는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의존적이다. 받아주는 사람에게만 푸는 것이고, 유일하게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지면 절망감이 너무 커서 무너져 버린다. 사람을 죽이면 자기 인생도 끝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이들에겐 처벌과 치료가 필요하지 연인의 애정이 필요하지 않다.
 



이은의 변호사는 폭력 사건에서 데이트나 썸이 붙으면 감경 사유가 되는 점을 지적하며, 별도 법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홍연 기자

 

-데이트 폭력 사적 영역으로 인식돼 쉬쉬하거나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폭력에 대한 교육을 안 한다. 때린 건 잘못, 맞은 건 피해라는 교육이 없다. 내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누군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이런 전제가 없으면, 소중한 존재였는데 이제 아닌가란 생각이 들며 자존감 방어체계가 이상하게 작용한다. 상대를 근절하는 거로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맞은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함부로 여겨서 때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이 맞았다고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고 생각하며 숨기고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피해자가 말을 잘 못한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조기에 헤어져야 한다. 작은 폭력이 커질 거라는 건 쌀이 끓으면 밥이 된다는 이치와 같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잘하면 안 그럴 거야' '이 정도를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수임 건수는 얼마나 되나 
 
데이트 폭력은 소송이 거의 없고, 상담이 많다. 상담하러 왔다가 눈물 흘리고, 위로받고, 절망하고 간다. 아직 만나고 있어서 소송을 안 한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도 관계가 진행 중인 경우 거의 고소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형사·민사 소송은 관계가 단절된다는 전제하에 이뤄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다상대가 현행범으로 체포됐을 때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사람은 공포가 있다. 맞던 사람은 손만 올라가도 움츠러드는 경험이 있어 보복 범행을 두려워하고, 소송보다는 안전 이별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성폭력 관련 판례 동향은 어떤가
 
판례가 나쁘게 나오기는 어렵다. 남이 알 정도가 돼 드러난 폭력은 상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미한 폭력 상황이 생겼을 때 단순 폭행으로 치부하는 거다. 데이트하면서 폭력이 행사돼도 상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벌금형으로 처벌이 경미하다. 데이트 폭력을 단순 폭행으로 바라보는 법조 관행의 문제가 크다. 형사뿐 아니라 민사에도 이 같은 시각이 적용돼 배상금액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범죄에서는 ‘왜 도둑맞았니’처럼 주의의무를 따지지 않으면서도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는 따진다. ‘맞았는데 왜 만났어’, ‘신고 안 했어’라는 식이다. 데이트나 썸이 붙으면 감경 사유가 되는 것도 문제다. 별도 법제가 필요한 이유다.
 



대전대 학생상담센터가 성년의 날인 지난 15일 교내에서 '너는 사랑이라 부르고 나는 폭력이라 부른다'라는 행사를 개최한 가운데 데이트 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포스트잇을 통해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각에서는 폭력 전과를 공개하는 한국형 클레어법 도입을 주장하는데.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클레어법은 여성이 교제 남성의 전과를 경찰에 문의해 알 수 있도록 하는 가정폭력전과 공개제도다. 우리나라도 교제 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면 정보를 공개하는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전과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것뿐 아니라 가정폭력 전과자의 신상정보 등록도 해야 한다. 가정이 내밀해야 하는 거지, 폭력이 내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트 폭력 방지 및 대처를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나.
 
관계에 기반을 둔 폭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담당하는 원스톱 지원 센터가 필요하다. 데이트 성폭력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에서 관리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아직 시스템이 미비하다. 피해자 상태를 점검해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면 머무를 수 있는 임시 거처도 마련해줘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당사자였다. 변호사가 된 후에 그 경험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피해 당사자와 조력자인 변호사들 사이엔 먼 거리가 있다. 여자 변호사더라도 대부분 일반 여직원으로 긴 시간을 보내본 적은 없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조직을 알기 때문에 증거 수집과 가공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게 많다. 피해자 변호사들은 재판에서 말을 잘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항상 피해자 주장과 고통에 대해 강변한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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