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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토마토칼럼)아동학대의 본질은 '자녀의 도구화'

2017-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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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답게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아동인권도 여러 관심사 중 하나다. 관련 공약으로는 아동수당 도입, 아동인권법 제정이 있다.
 
다만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아쉽다. 지금껏 추진된 대부분의 아동 관련 대책은 ‘계층’으로서 아동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 대통령의 공약들도 큰 틀에선 마찬가지다.
 
기존 대책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동학대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영유아 사교육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동 빈곤율이 2006년 13.4%에서 2015년 12.8%로 낮아진 점(보건사회연구원 ‘아동빈곤의 추이와 함의’)은 긍정적이지만 여기에도 저출산이란 함정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소득 청년들이 결혼·출산을 미루면서 빈곤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아동 빈곤은 계층적 접근으로 해소 가능하다. 문제는 부모·자식이라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인권 문제다. 학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동인권 침해는 부모에 의해 발생한다. 또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 혹은 수단·도구로 인식하는 낡은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이 같은 ‘자녀의 도구화’는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는 우리나라의 슬픈 자화상이다. 부모의 과도한 욕심은 운동장을 뛰어다녀야 할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가둔다.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와 우울증,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 따른 죄책감에 시달리고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른 일부는 행복이란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부모의 폭력, 학대, 방치에 신음한다. 영아유기, 영아살해 사건도 이제 흔한 뉴스가 돼버렸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는 지난해에만 100명이 넘는다.
 
자녀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은 법에도 존재한다. 바로 영아살해죄다. 우리 형법은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행위(제250조 2항)에 대해 일반적인 살인(5년 이상 징역)보다 높은 형량(7년 이상 징역)을 적용하지만, 영아를 살해하는 경우(제251조)에는 이보다 가벼운 형량(10년 이하 징역)을 적용한다. 그나마도 영아살해죄 외에는 비속살해 조항이 없다. 자녀를 살해하는 행위는 특별히 무겁지 않거나, 오히려 가벼운 죄로 여겨진다.
 
이는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유교적 사상이 반영된 결과다. 과거 효(孝)가 중시된 나머지 자녀의 인격과 삶에 대한 존중은 간과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존속살해 규정을 두고 있는 상당수 국가에서 비속살해 규정도 둬 존·비속을 불문하고 혈족에 대한 범죄를 무겁게 다루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아동에 대한 계층적 접근, 규제·처벌 등 단면적 처방으로는 아동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또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개체로 인식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단 종속적 시각에서 부모·자녀 간 관계를 규정한 낡은 제도와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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