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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LIVE다이어리)다른 공간, 같은 시간이 흐르던 그날

2017-06-1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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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공연을 보며 적는 단상들입니다. 개인 서랍장에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공연 본 순서도 뒤죽박죽이 될 것 같습니다. 그저 보고, 들은 느낌을 적는 단촐한 공연 일기 정도가 될 것입니다.)




2001년 10월11일 오후 5시. 암전돼 있는 일본 도쿄의 한 스튜디오가 카메라에 비춰진다. 당초 예정됐던 공연이 사정상 진행될 수 없다는 주최 측의 자초지종이 흐른다. ‘김 실장’이라는 얼굴 없는 남성은 연신 “죄송하다. 진정해달라”를 연발한다. 그러다 정적을 깨는, 장난기 어린 미성의 목소리가 흐르며 세팅된 무대를 비춘다. “그만하세요. 김실장님. 너무 진짜 같잖아. 속은 사람 손 들어봐!” 


다른 공간, 같은 시간이 흐르던 그날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서태지(T)가 주최하는 록 페스티벌 ETPFEST(기괴한 태지 사람들의 축제, Eeire Taiji People) 첫 회. 그는 카메라 앵글을 고개 숙여 들여다보며 손을 흔들며 “죽어보자”고 했고 서울 잠실 보조경기장에 있던 6000명의 관객들은 미친 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ETP의 맨 앞 스펠링처럼 최대한 기괴하고 기괴하게. 


서울과 도쿄 사이의 1000여km 거리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앰프로 변형된 기타톤과 탱크소리를 연상케 하는 드러밍은 공연장에 설치된 웅장한 스피커를 타고 원형 경기장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스크린으로 주고받는 대화와 교감들은 공기의 온도차마저 자연스럽게 희석시켰다. T는 이날 ‘인터넷전쟁’으로 시작해 ‘울트라맨이야’, ‘필 더 소울’로 치닫는 핌프록으로 잠실벌을 뜨겁게 달궜다.


새로운 행성에서 외계의 수신호를 받듯 진행된 멋지고 독특하고 참신했던 공연. 그 공연이 올해 그의 25주년을 맞아 모바일 버전으로 나온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유튜브로 기어가 오디오 스위치를 올려본다. 늘 새롭게 무장하던 그의 파격은 이제 공간을 넘어 시간까지 잠식해 들어간다. 불현 듯 VHS로 테이프 늘어지라 돌려가며 보던 중2병을 앓던 추억도 겹쳐진다. 커피의 뒷맛처럼 세월의 속도감을 반영하는 약간의 씁쓸함도 맴도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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