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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늬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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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공감불능은 사회에 독일까 약일까

손원평 지음/창비/2017.03.31

2017-06-22 11:18

조회수 : 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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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애오욕.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감정이 없었으면 편하겠다'
타인과의 관계, 직장생활 등 하루에 몇천번씩은 수없이 바뀔 감정변화가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의 다툼, 친구와의 갈등 등을 겪을 때 신경이 너무 쓰여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더더욱 그럽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짝사랑이든 실연을 당하든, 뜨거운 열애중이든 '감정싸움'에 지쳐버리기도 할테니까요.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어쩌면 지독히도 편한 아이일 수 있습니다. 어떤 감정도 갖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할머니는 윤재를 '괴물'이라고 불렀죠. 그는 엄마와 할머니가 본인 눈 앞에서 살해 당하는 사건현장을 보지만 감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슬프지도 무섭지도, 혹은 본인만 살아남았다는 자괴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엄마와 할머니가 웃고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왜 그랬는지 끝없이 궁금해 합니다.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 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윤재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살해한 남자는 본인의 삶만 괴롭다고 느껴 세상을 증오합니다. 나는 아프고 힘든데 누군가는 웃고 있다는 것 자체를 공감하지 못합니다. 공감불능사회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건을 떠나서 사실 우리도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려고 노력하기는 할까요. 내가 힘들고 내가 괴로운데,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해 남을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윤재와 뭐가 다를까요.

윤재 앞에 곤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끼어듭니다. 곤이는 어릴 때 부모를 잃어버려 혼자 이곳저곳 방황하고 살다가 깡패가 돼버린, 다시 대학교수 아빠를 찾았지만 더 삐뚤어져만 가는 아이입니다. 곤이는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윤재에게 알려주고 싶어합니다.

곤이가 가장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이런 감정들을 윤재는 겪지 못하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굴면서도 어쩌면 본인이 그런 일들을 더 감당하지 못하는 여린감정을 가진 곤이는 윤재의 '무감정'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윤재도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곤이를 구하러 깡패소굴로 들어간 윤재가 칼에 찔려 죽을 위험에 처합니다. 곤이의 눈물방울이 윤재의 얼굴 위에 떨어지는 순간 뭔가 '탁'하고 터집니다. 울컥. 이라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외로움인지 아픔인지 두려움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는 괴물에서 인간이 됩니다.

저를 비롯한 세상에 수많은 괴물들이 있습니다. 잘못된지 알면서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아는데 안하는겁니다. 작년 우리는 최순실사건을 접하면서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고, 정권교체에 힘을 모았습니다. 못하는것도 아니고 안하는것도 아닌 ‘공감가능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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