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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피플)정창률 교수 "아동수당만으로 아동빈곤·저출산 문제 해결 어려워"

"가뭄난 땅에 분무기로 물주는 격…기초연금보단 최저연금제 도입이 효과적"

2017-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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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석·박사 과정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틀었다. 주된 관심사는 퇴직연금을 비롯한 연금제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복지위원장,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연구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시민단체와 학회를 오가며 목소리를 내왔다.
 
정 교수는 무분별한 복지 확대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복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주된 수혜 대상은 비정규직,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어야 한다. 또 복지에도 ‘효율성’이 필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앞둔 현 상황에선 복지가 급변하는 노동시장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정 교수는 “실업자도 늘고, 사회보험 사각지대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 복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20일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충남 천안시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연구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하 일문일답.
 
-최근 아동수당 도입이 이슈다.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
 
아동수당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했다.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88%가 도입했다. 프랑스, 독일 등에서 아동수당의 의미는 아이를 낳았을 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없애주는 것이다. 공공교육, 공공의료가 바탕이기 때문에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만 정부에서 보조해주면 출산을 선택하므로 인한 추가 비용이 사라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10만원을 줘봐야 애들 학원비 보태주는 정도밖에 안 된다. 아동에 대한 불필요한 지출이 많다. 여러 대책 중 하나일 순 있겠으나, 아동 빈곤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교육비, 주거비는 매년 오른다.
 
제일 중요한 게 교육과 주거다. 그 두 가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아동수당 10만원으론 턱도 없다. 가뭄으로 논밭이 갈라지는 데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우선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렇게 온 나라가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붓는데 노동생산성은 높아지질 않는다. 무의미한 줄 세우기만 계속되고 있다. 주거 문제도 복지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선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들이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 아동수당을 비롯한 복지제도가 효과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사는 데 필수적인 비용이 줄어들어야 한다.
 
-기초연금도 30만원까지 오른다고 한다. 효과가 있을지.
 
노후소득의 중심은 국민연금이다. 그런데 75세 이상 노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기회가 없었다. 이런 사람들의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한 게 무기여형 기초연금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초연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다수는 노인빈곤율을 해소하기 위해선 최저연금제도를 도입해 부족분을 매워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노인에게 20만~30만원씩 주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정말 빈곤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국민연금수급자는 기초연금이 줄어들고, 기초생활수급자는 받은 기초연금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와 국민연금, 기초연금 사이의 관계가 어정쩡하다. 국민연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민연금 추후납부분을 되돌려달라는 가입자를 많이 봤다. 노령연금을 받으려고 십수년치 보험료를 추납했는데, 그것 때문에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됐기 때문이다. 앞으론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론 기초연금을 동결시키고, 일정 시점부턴 국민연금 중심으로 연금제도를 재정비하고,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을 보조하는 형태로 개편해야 한다.
 
-국민연금 중심으로 연금제도를 재정비하려면 국민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도 끌어올려야 할 텐데.
 
공적연금의 목적은 빈곤 경감과 소득 유지다.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은 예외없이 보험료가 20% 정도다. 이탈리아는 공적연금 보험료만 33%다. 보험료가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은 소득 유지라는 목적을 접고 빈곤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대신 개인연금, 퇴직연금의 공공성을 준공적연금 수준으로 강화시켰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의 경우 국민연금과 통합하잔 주장도 있다. 다만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과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어려울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기본적으로 ‘내가 낸 돈도 못 돌려받을 것’이라는 불신이 강하다.
 
우선 홍보가 잘못된 면이 있다. 도입 초기에 공단에서 노인과 재테크를 합쳐 ‘노테크’란 말을 만들어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재테크인데 어떻게 기금이 고갈되느냐. 거기에서부터 불신이 시작된 거다. 그리고 사회보험의 필요성은 경험으로 느끼는 것이다. 최소한 부모세대가 연금 혜택을 보면 자녀세대는 자연스럽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면서 인식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다만 건강보험만큼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크다.
 
국민연금은 크레딧, 두루누리 같은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단 가입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들은 미가입자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공단에선 적극적으로 가입자를 유치하지 않는다. 우선 기여·급여 간 관계를 느슨하게 풀어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들에 최저생계비 정도라도 보장해주고, 미가입 사업장을 적극적으로 찾아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산업재해보상보험처럼 시스템을 바꿨으면 좋겠다. 미가입 노동자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선 보장해주고, 사후에 사업장에 보험료를 청구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사회보험을 확대하려면 돈이 든다.
 
돈이 드는 건 불가피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제도는 저소득층보단 중상층 위주로 보호해준다. 육아휴직제도를 확대해봐야 대기업, 공공기관, 교사들이 주로 혜택을 본다. 비정규직, 저소득층은 육아휴직은커녕 실업급여도 제대로 받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실업자 중 구직급여 수급자 비율은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최근 ‘중부담, 중복지’ 담론이 화두다. 우리나라도 중부담, 중복지로 가야 할 시점이라 보는지.
 
뭉뚱그려서 중부담, 중복지라고 하는데 어떤 부담을 늘릴 것인가를 구분해야 한다. 조세를 늘리는 것과 사회보험료를 늘리는 것은 다른 처방이다. 정부가 제일 쉽게 말하는 게 법인세인데, 단기적으론 법인세 인상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론 사회보험료 부과체계를 손봐야 한다. 사회보험료는 노동에만 물리는 비용이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 기업들은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비노동임금에도 사회보험료를 부과할 것인지, 세금을 더 걷어 사회보험료 부족분을 매울 것인지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복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지.
 
현 시점에선 급변하는 노동시장의 충격을 해결하는 게 복지의 역할이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돈벌이를 생각하는데 그건 시장이 할 일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부작용과 노동시장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다. 학회에선 기본소득을 많이 얘기하는데, 평상시 패러다임에선 도입이 어렵다. 실업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증가하고, 이 사회가 뒤집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면 도입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노동시장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실업자도 늘고, 사회보험 사각지대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 복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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