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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하루의詩)'피로와 파도와'

2017-06-28 11:06

조회수 : 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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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정신 없는 환경에 놓인 우리는 정작 하루에 시 한 편 읽기도 힘듭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하루에 시 한 편씩 시들을 필사해보고자 합니다. 마음 한 켠에 남을 만한 시어들을 적고 따라 읽어보며 스스로 몰랐던 감정, 감각들을 깨워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시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가수 요조의 글이 있어 소개해봅니다. '피로와 파도와 손톱과'라는 재밌는 제목으로 작년 6월 한겨레에 올린 칼럼입니다.


어쩌면 내 평생 처음으로 해외에서 ‘정식’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뮤지션이라는 명찰을 가슴팍에 달고 나서 휴가라는 말을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휴가 다녀오셨어요, 라든가 휴가 계획이 있으세요, 라는 질문은 여름 태양이 피부를 따갑게 하듯이 휴가철마다 나의 귀를 따금따금하게 하는데 그때마다 나 같은 사람은 특별히 휴가랄 게 없다고 어물거리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쉬려고 모인 곳에 가서 일(노래)을 기쁘게 한 다음에 약간의 짬을 더 내어 그 지방의 별미를 챙겨 먹거나 혹은 그 지방의 절경을 잠깐 구경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휴가를 어느 정도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갈망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정식’의 기분이었다. 뮤지션으로서 일하다가 겸사로 맛보는 휴가가 아닌 뮤지션이라는 꺼풀을 벗고 정식으로 임하는 휴가.


그 휴가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프라하에서 약 일주일을 머물렀고, 파리에서 삼일, 그리고 지금은 바르셀로나에 있다. 아직도 나는 서툴다. 아무 공연 일정이나 인터뷰가 없고, 기타를 메고 다닐 일이 없고, 늘 함께 동행하던 다른 연주자들이 없다는 것이 영 적응되지 않는다. 늘 짬을 내서 놀았는데 하루 24시간이 통째로 주어지니 감당이 되질 않는다.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잠이라도 느긋하게 자고 싶은데, 왜 이렇게 부지런한 새처럼 동만 트면 눈이 떠지는지.

어제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갔다. 아직 날씨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아 바다 안에는 옷을 입은 채로 우왕좌왕 자신의 객기를 뽐내고 있는 남자 한 명뿐이었다.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서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한 그리움이 만져졌다. 그것은 가슴이 호출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아니었고, 혀가 호출하는 맛있는 한국 음식들도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움의 실체는 두 손이 호출하는 리듬이었다. 내가 두 손으로 기타를 만지며 만들던 리듬. 여행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기타줄을 튕기기 좋게 늘 어느 정도 기른 채로 유지하던 오른손의 손톱들을 바짝 자른 일이었다. 당분간 기타를 칠 일이 없을 것이었으므로.

손톱은 다시 자라 있었다. 다시 리듬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듯이.

나는 기타 없는 손으로 허벅지께를 가만가만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2년 전 이제니 시인이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러주었던 노래이자 시였다.

자신의 시를 노래로써 낭독하는 근사함 때문인지, 누구도 안아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닮은 멜로디 때문인지 나는 그날 한번 듣고도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단박에 비슷비슷 부를 수가 있다.

미파미 레미레 도레도 시도시 시도도- 도레레- 미레레-

나는 별수 없이 리듬의 자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아마 리듬이 듬뿍한 이 시로부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수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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