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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향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17-06-28 15:07

조회수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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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뉩니다. 논리, 언어 처리는 좌반구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예술, 공간 감각은 우반구의 기능이 두드러집니다. 우반구는 사실 열등한 반구라는 멸시를 당할 정도로 연구가 소홀하게 이뤄졌습니다. 좌반구의 손상 부위와 증상은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우반구 영역의 증후군은 알아내기가 힘든 것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우반구는 연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알 수도 없고 외부 관찰자도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우반구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병력사를 쓰기로 합니다. 의사로서 임상보고뿐 아니라 환자들의 생애를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언젠가는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이 발간된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환자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지미 G.라는 인물입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란 알코올 중독의 결과로 나타나는 기억상실증입니다. 49세인 그는 해군으로 일했던 20세까지의 일들만 생생히 기억합니다. 현재의 일은 1~2초만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집니다. 심리학자 루리야의 말대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하나 분리되고 고립되어서 아무런 맥락도 없는 잡다한 인생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이런 의문을 갖습니다. “그에게 영혼이 있을까?” 어쩌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삶은 불안 그 자체이며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미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본 올리버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긴장과 정숙이 감도는 가운데 그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서 종교의식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 어디에서도 기억상실증이나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에게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유기적인 통일을, 바늘 하나도 꽂을 틈 없는 연속을 그는 달성하고 있었다. 분명히 지미는 정신 집중에 몰두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연속성과 현실성을 되찾았던 것이다.”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이기에 지미는 미사를 드림으로써 영혼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력에 문제가 없는 우리 모두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만큼은 어떤 일에 집중함으로써 자아를 발견하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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