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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우리세대는 후손에게서 지구를 빼앗았습니다“

'침팬지 할머니' 제인 구달-최재천 교수 에코토크

2017-08-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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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인간은 지구를 빌린 것일 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세대는 후손에게서 지구를 빼앗은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려면 인간은 탐욕을 줄여야 합니다."
 
백발의 ‘침팬지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공식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어린이들은 침팬지 할머니 곁에 삼사오오 모여 연신 휴대폰 사진 촬영 버튼을 눌렀다. 어린이들에게 침팬지 할머니로 통하는 제인 구달(83) 박사는 미소로 화답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침팬지 할머니로 널리 알려진 구달 박사가 '에코휴머니스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지난 10일 '제인과 재천의 에코토크'를 했다. 이 행사는 아시아기자협회의 김학준 이사장과 이상기 창립회장, 전혜숙 의원 초청으로 열린 것이다.
 
행사가 열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은 구달 박사의 ‘환경보호’ 메시지에 집중하는 어린이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청중석을 가득 메운 어린이들에게 구달 박사는 “힘의 원천은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열정”이라고 격려했다.
 
동물행동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구달 박사는 평생 침팬지 연구로 침팬지와 인간이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스물여섯살 때 침팬지가 집단으로 사는 탄자니아 국립공원 곰비에서 살며 본격적으로 침팬지 생활을 관찰했다. 지금도 침팬지의 소리를 직접 흉내 내며 교감할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 구달 박사는 침팬지 등 동물도 인간처럼 사랑·분노 등의 감정을 지녔고,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탐욕·오만을 경계했다.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는 지금의 환경·생태계를 만든 것은 우리들의 결정과 선택 때문이라며, 지금 위기에 놓인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선택한 생활양식을 바꿀 수 있도록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이다. 자발적 생태운동 단체인 ‘뿌리와 새싹’은 1991년 구달 박사가 만들어 시작했지만 그가 관여는 하지 않는다. 국내에도 170개가량의 ‘뿌리와 새싹’이 있는데, 다양한 사회·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조직이다.
 
구달 박사의 제자이자 국내 동물행동학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는 저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서 동물과 인간의 세계를 비교하면서 인간과 다른 듯 닮은 동물의 세계를 글로 풀어냈다. 생태계를 통해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통섭의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1996년 구달 박사의 첫 방문 때 한 과학잡지를 통해 그와 인터뷰를 한 뒤 인연을 맺었다.
 
최 교수의 질문과 구달 박사의 대답으로 진행된 이날 에코토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평생을 침팬지 연구라는 한길을 걸어왔다. 침팬지가 사라질까 봐 연구를 중단하고 침팬지를 살리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했고, 1년에 300일가량 세계를 여행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계를 보호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국가를 방문하는가. 집이 비행기라는 말도 했다.
한국에 오기 전 10개 국가를 방문했다. 한국 방문 뒤 2주가량 쉴 계획이다. 올해 83세다. 얼마나 더 일할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속도를 더 내고 싶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비대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말하기를 저를 직접 만났을 때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강도가 달랐다고 했다.
 
힘의 원천은 어디인가.
젊은이들, 청중들이 보여주는 열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 힘을 받지 못했다면 제대로 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계를 파괴되도록 그냥 남겨두지 않겠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세계와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 세대들은 지구를 빼앗았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젊은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모두 각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은 행동을 취하지 않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의식주 등 삶의 방식에서 적절한 선택을 한다면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자리에도 어린이들이 많이 왔는데, 보통 아메리카 젊은이들은 ‘지구를 세계에서 빌린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들은 지구를 빼앗은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젊은이들과 침팬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나라를 가든 젊은이들의 무력감을 느낀다.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들이 지구를 망쳤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여러분께서 그렇게 느꼈다면 맞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뿌리와 새싹’은 변화를 위해 우리가, 젊은이가 스스로 행동을 취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한 프로젝트는 젊은이들을 도와주는 것이고, 어떤 프로젝트는 동물을, 환경을 돕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하다. 국적이 다른 사람 사이에, 정부와 다른 정부 사이에, 젊은 세대와 이전 세대 사이에 있는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뿌리와 새싹’을 탄자니아에서 시작했다. 현재 몇 개 국가에 확산했나.
‘뿌리와 새싹’은 12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다. 국립공원 파괴를 걱정하는 학생,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채굴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와 관련된 부당한 문제를 걱정하는 학생들까지. 이들과 함께 ‘뿌리와 새싹’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학생이 함께하고 있다. 북한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2개 학교에서 ‘뿌리와 새싹 활동을 했었다.
 
대형 평화의 비둘기를 만들어서 세계 평화의 날에 날리는데 2년 전까지 북한 ‘뿌리와 새싹’ 팀에서 그런 활동을 했다. 구달 선생님의 메시지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치체제를 넘어서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환경파괴는 인류를 어떻게 만들까.
생물학자 등 과학자들은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힘을 합쳐 행동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제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너무 춥다’, ‘너무 건조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이번 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치인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잘한다면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일부 강대국은 기후변화협약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의 경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학적인 증거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온실가스가 전 세계적으로 지구를 싸고 있다. 산림벌채로 기후변화 문제는 악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학자는 300년 안에 인간이 멸종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희망을 말씀한다.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세계에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있는데, 먼저 빈곤 확산의 문제다. 극심한 빈곤으로 농촌 지역에서 살기 위해 나무를 벌채하는 일이 벌어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정크푸드를 먹는다. 정크푸드는 사육되는 동물을 살육해서 만들어진다. 지속 가능한 삶을 생각해야 한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소유하려는 사람이 많다.
 
제인 구달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에코토크를 하고 있다. 사진/김이향 기자
 
자연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환경이 있고, 동물이 사는 자연환경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자연환경은 야생에 직접 나가서 느끼는 대자연을 말한다. 대자연에 있을 때 영적인 느낌도 받는다. 인간에게 대자연은 필요하다. 인간이 너무 많이 파괴했다.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다.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는데, 학생들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며 열정적으로 말한다. 여러분들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조언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직접 행동을 해보면 어떨까.
 
한국에도 170개 정도 ‘뿌리와 새싹’이 있다. ‘뿌리와 새싹’은 지도자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2~3명만 모여서 동물과 자연을, 사회를 밝게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그게 바로 ‘뿌리와 새싹’이다. 한국에서는 생명다양성재단이 그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구달 선생님은 이런 활동을 지속해서 북돋기 위해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한국에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 60년 이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접근할 수 없던 곳이다. 지금은 생태계가 보존이 잘되고 있는데, 통일 이후까지 DMZ를 잘 보존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DMZ는 정말 흥미롭고 귀중한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우려되기도 한다. ‘뿌리와 새싹’이 중요하다. 많은 국가 학생들이 다양한 철학을 가지고 자라나게 된다. 학생들이 저에게 와서 환경을 사랑하고 관심 크다고 이야기한다. 뿌듯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뿌리와 새싹’이다.
나는 어머니의 헌신으로 동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줬다. 10살에 아프리카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을 안 했다. 당시 전쟁 후라 가난했다. 중고로 구입해서 책을 읽었다. 생계를 걱정하면서 어떻게 아프리카에 가느냐고 많은 사람이 비웃었을 때 어머니는 비웃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많은 아이가 ‘제인구달 박사님이 해서 저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 너무 흐뭇하다.

삶에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가장 어려웠던 것을 꼽는다면.
‘뿌리와 새싹’을 시작한 게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이 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인간만 도구를 만든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서 이 부분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과학적 사고는 확장됐고,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침팬지가 몸짓하고 여러 도구를 사용하는 게 관찰됐다. 특히 손짓으로 소통하는 동물도 있다. 침팬지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 침팬지는 인류와 98% DNA 유사성을 갖고 있다. 면역체계도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과 침팬지 행동과 생물학적 유사성을 생각해보면 침팬지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물론 실수할 때도 있지만, 실수에서 배운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공대를 떠나려했던 몇 개월 동안의 시간이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연구하던 학생들도 떠나야 했다. 학생 중 4명이 납치가 된 적도 있다. 자금도 떨어졌고. 다행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돼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도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메시지를 부탁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 내게 어렸을 때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서두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서두르지 말라. 대학을 떠나서 실제 삶의 현장에서 살아보고, 자원 봉사를 해보고,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꿈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서두르면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포기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제인 구달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에코토크를 하고 있다. 사진/김이향 기자
 
“동물과 인간 공존하려면 인간이 탐욕 줄여야”
 
동물학대는 법이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 아닌가.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공존해야할까.
나라마다 법체계가 다르다. 내가 법 전문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동물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더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는 걸 멈춰야 한다. 그래야 공존할 기회가 많아진다. 동물과 인간이 경쟁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탐욕을 줄여야 하는데,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동양과 서양은 동물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동양은 동물을 보신하기 위해 먹기도 한다. 동물 보호에서 문화 차이를 모색해야 하는데.
당연하다. 문화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는 바뀌는 거로 생각한다.

'자연 치유'라는 말이 있다. DMZ를 그대로 두면 혹은 자연을 그대로 두면 자연 치유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개입해야 하나.
좋은 질문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자연의 회복력이 중요한데, 세계 많은 곳곳에서 벌채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토지가 황폐화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과 협력해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변화는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과 협력하면서 이들이 사는 삶의 양식을 개선해야 한다. 숲은 굉장히 중요하다. 숲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이므로 중요하다. 그래야 동물들이 이동할 수 있다.
 
제인 구달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코토크를 마치고 아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이향 기자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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