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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이제는 정경유착으로부터 해방될 때

2017-08-3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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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다. 뇌물공여, 재산국외도피, 횡령,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등 혐의 전부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받았다. 뇌물 금액 중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그래서 재산국외도피도 일부만 유죄가 인정되었지만 주요 부분은 유죄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아니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총수가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한 시대가 끝나는 느낌이다.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로부터 대한민국이 해방되는 느낌이다.
 
재판을 통한 과거의 청산, 시대의 전환은 우리 역사에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96년과 1997년에 있었다. 당시에도 세기의 재판을 통해 한국은 과거로부터 해방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그것이다. 당시 전두환, 노태우는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주된 것은 군사반란과 쿠데타, 그리고 뇌물이었다.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형은 감경되어 최종적으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재판에서 뇌물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판결을 통해 확정된 뇌물 액수는 전두환 2,200여억원, 노태우는 2,600여억원이었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상상도 안된다. 그만큼 정경유착도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당시 재판의 관심사는 뇌물이 아니었다. 12.12반란과 5.18쿠데타가 쟁점이었다. 언제든지 군이 병력을 동원하여 정권을 잡는 행태, 군인들이 국가의 원수를 정하는 쿠데타를 단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군사반란과 쿠데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단죄를 통해 우리는 겨우 군사반란과 쿠데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 쿠데타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더 이상 국가위기를 이유로 군이 마음대로 전방에서 병력을 빼내어 수도인 서울과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정치인들을 구금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역사를 청산한 것이다. 물론 단죄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항소심에서 감형된 전두환, 노태우는 대법원 판결 확정 후 8개월만에 사면되었다. 정의의 관점에 선 법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을 앞세운 잘못된 사면이었다. 계속해서 쿠데타 세력이 발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전두환의 회고록 사태도 이때의 사면이 남긴 부작용이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으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이 하나의 고비를 넘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쟁점은 바뀌었다. 쟁점은 군사반란과 쿠데타가 아니라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다. 지금의 재판은 촛불혁명으로 시작된 것이다.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이 외친 것은 적폐청산이었다. 적폐의 핵심에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권력층이 있었다. 시민들의 정치권력 부패 청산 요구는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검찰개혁으로 모아졌다. 시민들의 경제권력 부패 청산 요구는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의 청산, 재벌개혁으로 모아졌다. 그 결과 특별검사가 도입되었고 지금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촛불혁명, 세기의 재판의 핵심은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의 청산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 한 번도 실질적으로 처벌받지 않았던 삼성의 최고경영자가 처벌받고 있고 박근혜가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청산은 완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군사반란과 쿠데타의 청산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쿠데타 세력이 준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쿠데타 세력이 우리 사회를 직접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퇴행을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이번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도 완전히 청산되어야 한다. 다시는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가 발생해서도 안되고 그 세력이 준동하는 것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재용 재판은 1심에서 무려 53차례나 공판이 열렸다. 증인도 59명이었다. 1심 재판이 충실했기 때문에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결과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항소심과 상고심 법관들도 역사의 무게를 알고 재판에 임하기를 기대한다. 군사반란과 쿠데타의 위험도 벗어났으니 이제는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로부터 해방될 때다. 그것도 완전히 해방될 때다.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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