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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세금앞에 국민은 거위다

2017-09-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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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앞에 국민은 거위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때의 재상이었던 콜베르라는 사람은 '조세기술(art of taxation)이란 거위 털을 뽑는 기술과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위로 하여금 소리를 가장 작게 지르게 하면서 털을 가장 많이 뽑는 것이 좋은 조세기술이라는 것이다.


  


납세자를 털이 뽑히는 거위에 비교한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될 수도 있으나 음미해 볼만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거위가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거위의 주인은 말 못하는 거위라도 소리를 지를 때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거위의 사정을 살펴본다. 납세자들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은 조세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거위는 왜 소리를 지르는가? 같은 수량의 깃털을 뽑아도 거위를 함부로 다루어 아프게 뽑으면 거위는 소리를 지룰 수 밖에 없다. 같은 세금을 다루어도 납세자들을 부드럽게 다루어야 한다. 세금을 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세금을 낼 돈이 있을 때 세금을 받아가야 불평을 덜하게 된다.


 


거위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할때 소리를 지를지 모른다. 왜 내 털만 많이 뽑고 내 친구 거위의 털을 많이 뽑지 않느냐고 불평을 할수도 있다. 나는 잘 먹지를 못해서 털이 신통치 않은데 왜 깃털이 많은 다른 거위하고 똑같이 뽑느냐고 대들 수도 있다. 납세자들의 불만의 가장 많은 내용은 불공평이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또 뽑은 털을 거위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정직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거위들이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거위 털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거위의 사료를 충분히 사지 않는다면 거위들이 시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납세자들은 주인이다. 조세로 거두어들인 국가의 수입을 정직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정부가 있다면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납세자를 거위로 비유한 콜베르 재상의 말에 동조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깃털을 무리하게 많이 뽑힌 거위는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죽은 거위는 다시 깃털을 생산하지 못한다. 거위 농장의 주인은 금년의 거위 털 수확을 적절한 수준에서 자제하고 거위를 잘 돌보아 주어야 내년에도 좋은 수확을 할 수 있다. 국가도 무리한 세금으로 국민경제가 활기를 잃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편 한국의 현행 조세제도를 살펴본다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근로자들이 있다.


 


810만명. 이 숫자는 전체 근로소득 과세대상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월급을 많이 받는 고소득 근로자는 높은 세부담을 떠안고 있는데 반해, 상당수가 저소득 근로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현행 근로소득세 과세체계를 둘러싼 '과세형평성' 논란은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다.


 


정부의 이른바 '거위털 뽑기식' 증세 작업은 조세저항만 불러일으킨 바 있다.


 


조세논리만 따져 면세자를 억지로 줄이려 할 경우 지난 2015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말정산 대란과 같은 사단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세법개정의 정신을 소개한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의 발언이다.


 


인위적인 세율 인상이 아닌 공제제도를 건드리는 식의 거위털 뽑기 작업은 사상 초유의 세법개정안 '퇴짜'라는 굴욕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수십년째 소득세 감면에 익숙해진 근로자들에게 증세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어, 증세의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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