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박민호

(박래군의 인권이야기)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를 수용해야 한다

2017-10-18 06:00

조회수 : 2,337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일까? 요즘 부쩍 강연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강연 때에 종종 세계인권선언 전문(前門)을 갖고 인권의 개념을 설명하고는 하는데, ‘신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인권에 나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에 대해서는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만큼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지난 9일 언론에는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무더기 권고”한 내용들이 실렸다. 우리나라는 유엔 사회권규약의 당사국으로 유엔에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규약 이행 여부를 평가받고는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 유엔 사회권규약에 가입한 이래 네 번째 성적표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은 유엔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즉 국제사회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척이나 창피한 성적표를 받아든 꼴인데도 한 번 보도 기사가 나고는 이에 대한 분석 기사도, 후속 기사도 없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권고를 받아서 다음 달에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는 후속 보도가 나온 정도가 있을 뿐이다.
 
유엔의 사회권위원회는 이번 권고에서 특히 “노조 할 권리”를 강조했다. 파업 참가 노동자와 노조에 가해지는 손배가압류에 대해 “쟁의행위 참가 노동자를 상대로 한 보복조치”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파업에 대해서는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국내의 정치권이나 언론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유엔은 한국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민·형사 처벌을 하지 말라고 거듭 권고해왔는데 이번에도 명확하게 그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노동법이 적용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호를 위해서 국제노동기구(ILO)의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 및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의 비준을 권고했다. 사회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노조 할 권리가 핵심적인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사회에서 2007년 이래 계속 무산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도 권고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는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지향·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보편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금지가 동성애를 합법화한다며 반대하고,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금지도 무슬림을 인정한다고 반대한다. 이런 주장은 극우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극우적 입장을 펼치는 기독교근본주의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고 법 제정을 포기하고 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기업 인권과 차별금지법, 노조 할 권리”와 관련한 권고사항을 18개월 이내에 이행사항을 보고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정부는 2019년 4월까지 이와 관련한 이행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유엔이 이렇게까지 권고한 것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유엔의 권고를 거의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고, 거듭되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권 보장 수준이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권고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의 사회권에 대한 유엔의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18개월 이내에 ‘노조 할 권리, 기업의 인권, 차별금지법 제정’ 등과 관련한 로드맵이라도 제출하는 것으로부터 유엔 인권기구의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사회권이 무시되는 사회는 차별과 궁핍이 당연시되는 야만사회다. 차별을 시정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사회권 관련 권고를 수용하고 이행해야 한다.
자살률 OECD 1위인 대한민국에서 오늘도 사회권보장에서 배제된 이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부가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 박민호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