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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시론)집단자살 사회와 스타트업

2017-11-02 08:00

조회수 : 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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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가 우리나라를 ‘집단적 자살사회(collective suicide society)’라고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여성들이 출산을 회피하고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경제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재정 상황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여학생들은 어렵게 취직해도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경력이 단절되고 ‘유리천장’에 좌절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저출산이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데 스타트업 분야는 과연 어떤가?
 
우리나라 스타트업 분야는 2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진 글로벌 수준의 ‘유니콘’들을 갖게 됐다. 소셜 커머스 회사 쿠팡은 2014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벤처캐피탈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1000억원을 투자 받았으며 2015년에는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 위메프, 티켓몬스터, 옐로모바일, 네시삼십삼분 등도 유니콘 기업으로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말 정부 주도의 벤처 붐 시절과 비교해 봤을 때, 글로벌 경험을 가진 창업자들이 적은 규모로도 린스타트업 형태로 쉽게 시작하면서도,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등 전문적인 스타트업 육성 기관들과 협업하며 글로벌 투자자들과 함께 일하는 보다 발전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역적으로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서울 강남구와 성남시에 주로 모여 있다. 특히 강남에서는 연간 3000회 이상 스타트업 이벤트가 열리고 있으며, 코워킹 스페이스라 불리는 협업 공간이 인기를 끌면서 방문자가 10만 명을 넘을 정도다. 80% 이상의 벤처캐피탈과 구글캠퍼스, 슈퍼셀, 애플, 위워크 등 글로벌 기업도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글로벌 수준의 ‘강남 스타일’ 스타트업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면이 있다. 2016년 한국스타트업 생태계 포럼 백서에 의하면 창업자 대부분은 남성(91.5%)으로, 30대(49%), 공학계열전공자(52%)다. 여성 창업자의 비율은 8.5%로 실리콘밸리 24%에 비해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 창업자 수는 극소수이고 한국 스타트업의 외국인 직원 비율은 17%로 실리콘밸리 45%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또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정부 지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아이디어를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즉, 창업은 하지만 성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원금 받을 목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체리피커’이나 지원 공간을 찾아 떠도는 ‘스타트업 낭인’들이 나타난다. 이런 불안정한 스타트업으로는 여성 고용 촉진과 저출산 극복에 기여하기 어렵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의 ‘2016년 창업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2016년 창업 스타트업이 엔젤이나 벤처캐피털로 투자받은 경우는 0.7%에 불과했다. 대개의 경우, 자기 자금이거나 대출이었고 정부 보조금이 엔젤투자보다 많았다. 이래서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집단자살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출산을 늘리거나 외부에서 인구를 유입시켜야 하는데, 스타트업으로서는 빠르게 성장해야 기여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민간투자 자본으로 이뤄진 벤처캐피털이다. 정부는 개별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하는 것보다 규제를 풀어주고 벤처펀드 출자를 도와줘야 한다.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털이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도 제공하고 멘토링 역할도 해야 한다. 글로벌 벤처캐피털도 기술 교류를 확대하고 스타트업 기업의 시장을 확대하는 데 강점을 살릴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군대 문화를 가진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중심으로 동질적이면서 빠르고 싸게 생산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였다. 대기업의 구성원들은 성별, 인종 및 문화적 다양성이 거의 없이 동질적이다. 한국 기업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일하는 것이 쉽다는 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동질적인 문화는 혁신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스타트업은 기존 대기업과 역할을 달리 하여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여성 및 외국인 창업자가 늘어나고 외국인 고용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면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스타트업을 갖게 될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에 스타트업 생태계 내의 다양성이 비즈니스의 혁신을 가져다줄 것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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