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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재벌 권력 ‘철옹성’, ‘사회적 자본주의’로 공략해야”

국가가 나서 공동체 이익에 맞게 자본 조정해야 근현대사 지배한 ‘금권정치’ 무력화 가능

2017-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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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로마의 라티푼디움과 같은 고대 계급사회를 연상시킨다. 극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적 삶과 절대 다수의 노예적 삶이 대비된다. 이 절대 다수는 명목상 시민이고 국민이지만 그들의 삶의 내용은, 구조적으로 빼앗기고 이탈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분명 노예적이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의 신간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불평등 문제를 고대 계급사회에 빗대며 풀어낸다. 자본주의란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권력을 쟁취한 자들과 그들의 특권에 치여 밑바닥을 부유해야만 하는 자들. 소위 ‘재벌 그룹’과 나머지 그룹으로 분화돼 버린 오늘날 한국사회는 그가 보기에 희망의 잔고가 ‘0’에 수렴한, ‘헬조선’의 세계다.
 
이런 결과가 있기까진 그에 앞선 ‘역사적 축적물’들이 있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종속적 자본주의가 태동한 일제 강점기를 그 시초로 본다. 현재의 삼성 규모에 해당했던 당시 일본 노구치콘체른은 당시를 대표하는 표본 기업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인력, 토지, 자원을 손쉽게 동원하며 ‘군국주의판 정경유착’을 실현해갔다. 이는 후대 한국 재벌에 의해 잘못된 형태로 ‘학습’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오른쪽)과 맥아더 장군. 사진/뉴시스
 
미 군정기와 이승만 정권기의 정치 논리는 오늘날 재벌을 육성시킨 밑거름이었다. 당시 친일·친미 우파 세력을 중심으로 적산(광복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제 소유의 재산) 불하가 이뤄지면서 민족적 자산이 돼야할 자본은 기득권 집단에 흘러 들어갔다. 한화의 창업자 김종희가 일본 경영진과 미군 장교와의 우호적 관계로 회사 경영권을 획득하게 된 스토리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한화를 비롯해 SK, 두산, 쌍용의 창업 기원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전개됐다”며 “민족 전체로 보면 국유화를 거쳐 정상적인 방법으로 민영화를 모색해야 했을 사례들”이라고 주장한다.
 
1961년 ‘부정 축재 혐의자’ 재벌들을 잡아들인 집권 초기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과는 다른 듯 보였다. 하지만 당시 삼성 회장이었던 이병철과 밀실 회담을 한 후 그의 노선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을 대가로 그는 부정축재 혐의자 재벌 12명을 전원 석방한다. 이후 이들은 강력한 처벌 대신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 지원을 받으며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기업을 성장시킨다. 미국 정부의 원조금 역시 이들에게 우선 지급됐다. 삼성 등 대형 기업들이 무역업을 축으로 특유의 ‘백화점식 경영’을 시작한 시점은 이때부터였다.
 
삼성 창업주인 고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 사진/뉴시스
 
정경유착은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 정점에 달한다. 이 시기 30대 재벌은 물론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과 공기업 등은 예외없이 정치권에 검은 돈을 제공했다. 이들이 제공한 정치 자금은 로비일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보험료였으며 국인에게 돌아가지 않는 준조세였다. 저자는 1995년 4500억~4600억원에 달한 노태우의 비자금이 밝혀진 사건에 대해 한국사회가 ‘뇌물공화국’임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준 사례라 평가한다.
 
정경유착의 평형적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건 소위 ‘진보 정권’이라 분류되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였다. 재벌이 틀어쥔 ‘자본 권력’은 정치권의 힘을 넘어서며 급기야 배후에서 조종하기에 이르렀다. 1993년 ‘신경제 5개년 계획 작성지침’와 ‘공정거래발전과제’ 등 김영삼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는 투자를 기피하는 재벌에 의해 무력화 됐고, 재벌 개혁을 외치던 노무현 정부는 재벌 총수가 모인 자리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인정했다. 현실정치의 필요에 의해 이어져 온 ‘금권정치’의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안 소장의 설명이다.
 
“자본은 정경유착을 통해 독점재벌로 성장했지만 자본권력의 독점을 스스로 성취해내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실제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자본권력의 지배가 영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말하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는 그 해답을 ‘사회적 자본주의’ 혹은 ‘사회화한 자본주의’를 검토하는 것에서 찾는다. 재벌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유화하는 식의 혁명을 하자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다. 사적 소유와 시장 기능을 전제한 가운데 자본의 운용을 공동체의 이익에 맞게 조정하자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키거나 연기금 의결권을 사회화시키는 것, 혹은 상속 등에 관한 세제 개혁, 시민적 입법을 통한 자본의 전횡 방지 등이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금권과두제는 ‘철옹성’이지만 포위해서 무너지지 않았던 성은 역사적으로 없었다”며 ”입법권과 시민사회권력을 활용해 (재벌이 불합리하게 축적한 자본의) 사회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는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은 우리 사회의 시점에 비춰 볼 때 너무나 절망적이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절망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일에서 시작하자”고 말한다. “희망의 근거를 찾을 때 우리는 희망부재의 타파를 모색할 수 있다.”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사진제공=내일을여는책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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