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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토마토칼럼)부동산이 만든 ‘사회 양극화’

2017-1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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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스쳐 피부에 와 닿는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학원이 밀집한 상가 주변만 지나면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보금자리에 도착하게 된다.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듯 보이는 중학생들이 잡담을 늘어 놓으면서 졸졸 따라온다. 활기 넘치고 목청 큰 소리로 대화하는 아이들의 대화가 자연스레 들렸다.
 
한 아이가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이곳에서 가장 싼 아파트인데, 브랜드도 없고, 평수도 좁아”라며 무심코 내뱉는다. 옆에 있던 친구가 “영수(가명)도 여기 사는데…”라며 말끝을 흘린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얼얼하다. 방향을 틀어 집으로 가야 하지만, 몸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집이 점점 멀어져 갔다.
 
얼마 전 퇴근길에 겪은 일이다. 아이들은 어느 동네, 어떤 브랜드, 어떤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지를 통해 사람을 구분화하는 잣대로 삼는 듯 했다. 이미 아파트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를 어린 학생들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직장이나 사회가 아닌 학교에서도 부모의 직장이나 거주 공간 등 배경을 통해 아이들의 등급화가 구분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면서 집값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빚을 내 억지로 집을 사도록 했고, 돈이 없는 서민은 가파르게 오르는 전셋값에 주거지를 떠나 외곽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올해 3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처음으로 6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노동자 임금 월 262만원을 한 푼도 안 쓰고, 20년간 저축해야 84㎡(34평형) 아파트를 겨우 장만할 수 있다.
 
특히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품은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 짓는 부동산 양극화를 초래하는 동시에 구획을 나누는 계층화까지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상위 소득자와 중하위 소득자간 부의 격차는 7년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은 올해 1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8.4% 증가한 142만5415원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하위 60%(1~3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일제히 축소됐다.
 
상위 20%의 사업소득 중 임대소득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부동산 임대소득자의 소득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상위 소득을 견인한 셈이다. 쉽게 말해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데, 집이나 건물(상가) 등 부동산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6·19부동산 대책에 이어 8·2부동산 대책, 10·24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식주는 삶을 영위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해 사회적 계층화와 양극화를 발생시키는 도구로 이용돼선 안 된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없애고, 집값 안정화를 꾀해 집이 투기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길 기대해본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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