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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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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만 염두에 두려합니다
(피플)“출산율 회복하려면 노동시간부터 줄여라”

목표치에 목 매는 정책 안돼…장기적 종합대책 없으면 100조 들여도 어려워

2017-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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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올해 합계출산율이 1.07명으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은 10년 동안 100조원 이상을 들였지만, 아기 울음소리는 계속 작아지기만 하고 있다. 대체 그동안 정책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앞으로 출산율은 올라갈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우려가 생기는 지점이다.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신설변경협의회 분과위원을 맡고 있는 정재훈 서울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단 출산율 수치에 목을 매는 정부의 인식부터 바꾸기를 주장한다. 여성을 ‘임신 자판기’로 여기는 인위적인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복지와 성평등이라는 양 축을 정책 기조로 삼아 자연스러우면서도 끈질지게 노력해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편집자주)
 
'2017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3명으로 전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 기관 등에 자문과 제언이 반영되는 편인가
 
꼭 저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주장해서 이뤄진 정책들이 있다. 보육료 지원을 주장했더니 누리과정 등 무상보육 정책이 만들어졌고, ‘아빠의 달’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육아휴직이 확대됐다. 요즘에도 정부에 저의 주장이 먹히는 것 같다. 목표 출산율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삶의 질을 높이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지난해 정부의 저출산 관련 기본계획만 해도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을 달성한다는 목표치가 있었으나, 이제는 설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옛날 성장주의 기조에서 살아온 40~50대 내지 경제학이나 통계학한 사람들은 목표치 설정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20~30대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은 “내가 애 낳는 기계야?”라며 반발한다.
 
정부가 목표치 같은 실적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출산율 상승을 달성할 수 있나
 
독일 등 외국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말 자체를 안 쓴다. 예를 들어 1세~2세 아동의 보육시설이 부족하면 시설을 확대할 뿐이지, 이를 통해 출산율 얼마에 도달하겠다고 하지도 않는다. 저출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정책을 만들지만 당장의 수치에 얽매이지 않는다. 출산 문제는 단기 정책 몇가지에 당장 매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 목표를 세우거나 예산을 짤 때는 (출산) 행위를 직접 지원하는 정책과, 출산을 하기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임신·출산·돌봄 등 행위를 지원하는 정책은 임신하고 출산하는데 드는 비용, 의료 비용, 산후 조리, 어린이집, 보육 지원 등이 있다. 결정을 지원하는 정책은 아이 낳기 전에 갖춰야 할 조건을 깔아놓는 정책이다. 보편적 사회보장으로 주거, 결혼, 직장, 교육 여건을 개선해 살 만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행위 지원 정책과 결정 지원 정책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니 예산 100조원을 들여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았다.
 
저출산 예산 100조원이 부풀려졌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안 알려진 이야기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저출산 예산 ‘거품’의 단초를 만들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참여정부 때인 2006년에 만들어졌으며, 실무 직원을 갖춘 사무국이 존재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70~80명이 파견된 것으로 알고 있다. 뒤이은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 위원회를 남발했다고 문제삼으면서 관련 법률에서 사무국 조항을 삭제해버렸다. 위원회를 전담하는 복지부 직원은 단 1명도 존재하지 않게 됐으며, 위원회 회의가 열릴 때나 활동했다. 이렇게 9년이 흘렀고, (탄핵 없었으면) 10년이 될 뻔했다. 9년 동안 위원회는 각 정부 부처에 저출산 대책 예산 내역을 보내라고 했지만, 정말로 그게 저출산 대책인지 판단해줄 전담 인력이 없었다. 교육부는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 지원 사업을 저출산 대책으로 제출했다. 교육 여건 개선이기 때문에 저출산 대책이라는 논리다.(웃음) 서울여대만 해도 1년에 20억~30억원 받고 있다. 그래서 교육부는 복지부와 함께 저출산 예산 액수로 ‘투톱’을 차지하고 있다. 국방부는 낼 게 없어서 청사에 있는 직장 어린이집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진짜 컨트롤타워가 돼야 하는데, 제도는 마련된 상태다. 현 정부는 법률을 다시 개정해 사무국을 부활시키는 방안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판단해, 시행령을 바꿔 사무기구를 두도록 했다. 직원은 40명 규모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사무기구 장은 10월에 부임한 공무원과 은수미 여성가족비서관이 공동으로 맡았다. 청와대가 저출산 대책을 챙기겠다고 의지 표명을 한 만큼, 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제조건, 필요조건을 갖췄다고 본다.
 
동거 등 비혼 인정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일각에서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 같다
 
20~30대 여성은 결혼으로 인한 ‘시월드’나 차별만 없으면 인생이 행복해 굳이 결혼을 택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직까진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다. OECD 회원국의 경우 태어나는 아기 100명 중 40명은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다. 비혼을 인정하는 제도로 출산율이 유지하는 셈이다. 커플이 서로 좋으면 같이 살고, 그러다가 아이도 낳고, 아이 낳았으니 결혼하는 과정이다. 유럽에서는 80·90년대 이후 ‘법률혼에 기초한 아빠·엄마·아이’라는 전형적인 가족 형태가 깨졌다. 한국도 당장은 힘들더라도 비혼 커플에게 법률혼과 비슷한 혜택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행복주택 입주 자격을 신혼부부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사람에게 주는 식이다. 유럽에서는 커플이 원룸에서 동거하다가 아이가 생기면 시청에 가서 임대주택을 문의한다. 시청에서는 그들이 아이를 낳을 사람, 키울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해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한다. 사회에 대개혁, 변화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계속 본인이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지금 20~30대 삶을 결정하려 들면 안된다.
 
최근 국무회의가 난임 휴가를 담은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실효성 있다고 보는가
 
난임 부부는 출산 의지가 높기 때문에 난임 휴가는 투입 대비 효과가 클 것이다. 다만 난임 정책이 너무 여성 위주로만 이뤄져 있다는 지적은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 임신 안되는 원인을 여성 중심으로 찾다보니, 혜택도 여자에게 집중되는 양상이다. 근무여건이나, 정자 문제 등 남성의 원인도 따지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남자도 시술에 필요한 시간, 비용, 감당해야 할 심리 문제 상담 등에서 혜택을 받아야 한다.
 
여성 경제활동 비중을 높이면 저출산 문제가 해소되는가
 
여성 고용률이 올라가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반대로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출산율도 올라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럽 복지국가는 ‘이행의 계곡’을 거쳤다. 여성 고용률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2명에서 1.5명으로 하락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올라가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직장 성차별 때문에 출산율이 내려가다가, 점점 늘어나는 여성 근로자가 목소리를 내 성평등한 노동 환경을 만들자 출산율이 다시 상승했다. 유럽은 보편복지 체제를 갖췄는데도 출산율이 내려가서 성평등까지 도입했는데, 한국은 보편복지와 성평등 모두가 없다. 그래서 한국은 2001년부터 15년째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초저출산이다. 스페인 11년, 일본은 3년에 비해 심각하다. ‘이행의 계곡’이 아니라 ‘이행의 늪’에 빠진 상태다.
 
출산율을 올리느라 성평등 정책을 펴다보면 역차별 논란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보편복지를 경험한 상태에서 성차별 문제가 나오니, 상대적으로 남성 스스로가 불이익 당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성차별은 남성의 특권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특권이라 함은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과 의식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남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못하면 사회보장이 ‘남자 구실’을 도와줬다. 우리는 보편복지도 안돼 남자가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성차별 문제가 치고 들어왔다. 남성의 여성혐오는 불안감에서 나왔으며, 이들이 제기하는 역차별은 다시 말하면 ‘부담’이다. 이젠 남성이 부양받으면서 살 생각도 해야 할 때다.
 
일각에서 셋째 출산에 1억원 지원 등이 거론된다. 충격요법이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만약 특단의 대책이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의 출산 정책 ‘적폐’를 사과하는 게 제일 좋을 듯하다. 여자를 아이 낳는 자판기로 취급하고, 낙태 규제도 필요에 따라 풀고 조이는 등 오락가락했다는 점 등이 사과할 거리다. “앞으로는 정말 나라다운 나라 만들테니깐, 확신이 들면 아이를 낳으시라.” 그것만큼 특단의 조치가 어딨겠는가. 
 
출산율 올리기 위한 출산 독려 정책 중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  한 가지를 꼽아달라
 
무상보육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특정 나이의 아동까지 무상의료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의료비 지원을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2세든, 5세든, 15세든 어느 나이까지 할지는 재정 여건에 맞춰 정하면 된다.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더라도, 인큐베이터에 있더라도 의료비가 안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직접적인 저출산 대책이 아니더라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정책 한 가지를 꼽아달라
 
노동시장 개혁이다. 일단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아이를 저녁 6~7시까지 어린이집에 맡겨놓는 일은 말이 안된다. 부모가 아이를 4~5시에 데리러 갈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노동시간이 1주일에 60~70시간이면 남자고 여자고 일가정 양립을 상상할 수 없다. 여성만 일가정 양립을 강요받거나 시도하고, 남성은 꿈도 못 꾼다.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필요하다. 보편사회보장제도를 하려면 사회보험료가 필요한데, 박봉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은 보험료를 낼 돈이 없다. 정규직 노조는 시간 단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동의해주지 않고 있다. 당장 정부가 주당 52시간 근로제한을 추진하자 불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가 대개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23일 연구실에서 저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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