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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서민 구한다는 법률구조공단, 출연금 받고 '있는 자'들 대리"

'공단 운영 문제점·개선 토론회'서 지적…방만한 기준과 무리한 확장 문제

2017-12-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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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홍연 기자]억울하고 돈 없는 서민들의 법률구조를 목적으로 설립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방만한 기준과 무리한 확장으로 ‘있는 자’들을 대리하는 사설 로펌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 주최로 14일 서울 역삼동 변협회관 14층 회의실에서 열린 '대한법률구조공단 운영의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진우 대한변협 이사는 “구조공단이 최근 조직의 양적 확장에 치중하면서 생계의 어려움이 없는 중산층, 더 나아가 일부 부유층까지 소송구조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김 이사는 우선 구조공단의 구조대상 기준인 ‘중위소득 125%’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2017년 현재 4인가구 기준 매월 558만4000원의 소득에 해당하는데, 매월 558만4000원을 버는 사람이 과연 극빈자인지 누가 보더라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기준 때문에 이 정도 소득을 거두는 사람이 구조공단의 소송구조를 받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 당연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참고로 2017년 현재 신입변호사들의 평균 급여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서초동 법조타운의 경우 신입변호사들의 급여가 매월 400만원 이하로 떨어진 실정”이라며 “이미 ‘신입변호사들이야말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소송구조 대상’이라는 씁쓸한 이야기가 법조타운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조대상 기준의 비현실성이 구조공단 처리사건수의 폭증 원인이 되는 한편, 일반 변호사들의 시장 상황을 악화시킨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9월4일자 보도를 인용해 “구조공단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건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소송구조 범위를 줄이고 극빈자들에게 내실있는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동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구조사무는 16만6920 건으로, 2001년에 비해 4배가 증가했다.
 
아울러 “구조공단이 애초에 중위소득 125%라는 높은 기준을 잡아놓은 것과 별개로 사실상 위 서류 하나만 제출하면 구조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소득수준을 제대로 필터링 할 수도 없는 구조”라면서 “ 구조 기준을 낮추어야 하며 그 증빙도 까다롭게 하여 극빈자만 구조를 받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사건 수는 폭증하고 극빈자들이 오히려 역으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구조공단이 농협과 수협으로부터 막대한 출연금을 받으면서 소위 ‘있는 자’ 들의 방패로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농협과 수협은 그 회원이라면 누구나 소득수준, 자산 수준에 상관없이 구조공단의 소송수조를 받을 수가 있다”면서 “그 가운데 수입억대 이상의 자산가는 물론이고 지역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이들을 구조공단이 조력하는 것이 타당한지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구조공단측은 농협으로부터 1~2년마다 13억원의 출연금을 받아 왔으며 이를 통해 받은 출연금의 누계는 2015년까지 198억원에 달했다. 그 대가로 구조공단이 농협 회원들에게 무료로 소송구조를 한 실적은 2015년까지 구조인원 11만 2580명, 구조금액 1조 3696억원(2015년 10월말 기준)이다. 여기에는 민사 뿐만 아니라 형사사건도 포함됐다. 김 이사는 “이는 단순히 농민과 어민을 돕는 순수한 취지의 조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이와 관련해 “구조공단은 사실상 사설 로펌과 마찬가지로 특정 단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착수금을 받고 그 구성원을 위해 상담 및 소송업무를 하는 사설 로펌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며 “이 가운데 해당 지역에서 수많은 자산가들과 유력자들이 그 수혜를 받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구조공단이 돈 많은 지역 유지들의 전담로펌이 되어 오히려 실제 조력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법적인 압박을 가한다’는 강렬한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공단과 농협 등의 이 같은 관계가 국내 법률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김 이사는 “국민들에게 변호사 문턱을 낮추어 주겠다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 하에 수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됐는데 이런 식으로 농협 회원들에 한해서만 1조원이 훨씬 넘는 규모의 사건을 처리하고, 중산층 이상의 소득자까지 소송구조를 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있는 관계로, 이미 ‘일반 변호사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는 낭비’라는 인식까지 퍼져나가 대다수 변호사들은 당장 생존까지 위협받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 이사는 “구조공단 측은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과장된 우려이며 대다수의 사건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규모가 작은 사건이다‘라고 항변할 것이지만 그러나 무엇이 사실인지 앞으로 공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토론자들도 문제 제기에 공감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단은 법률구조요건을 간명하게 하고, 무료법률구조대상자의 기준을 현실화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해 역량을 집중해 법률구조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상자 기준 조정에 따라 무료법률구조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농·어업인 등에 대해선 대한변협 등과 연계해 사각지대 발생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종협 변호사는 구조공단 운영실태에 대한 문제점 가운데 2가지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첫째로, 형사사건의 경우 법원의 국선변호인 선정제도가 적극적으로 운영돼 법률구조공단에서 형사변호를 담당하는 것은 불필요한 상황이 됐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둘째로는, 농업인과 어업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무료법률서비스 제공하는 정책을 개선해 기초생활수급자 등 법률구조가 필요한 자에게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은경 조선일보 기자는 “중위소득 125% 라는 소득기준을 낮추고, 소송구조를 받을 사람의 자력을 고려하는 등 법률구조체계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농협 조합원 대리에 대해서는 “농협 조합원 대리로 인한 쌍방대리의 문제는 법률구조공단 고유의 현상인데, 사례를 구체화해 실증적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농협의 법률구조공단에 대한 지원금 때문에 이런 논란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지원금으로 인해 공단 출범 취지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한변협 주최로 14일 변협회관에서 열린 '대한법률구조공단 운영의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황선철 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최기철·홍연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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