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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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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무비게이션) ‘리틀 포레스트’, 당신의 ‘작은 숲’은 어디인가요?

모두가 잊고 지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을 선물하다

2018-02-21 13:40

조회수 : 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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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쏟아내는 것에만 익숙해진 삶이다. 열정적이 되라고 다그친다. 노력은 필요의 산물이라고 윽박지른다. 그렇게 우리는 길들여졌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잠시 돌아볼 여유는 사치일 뿐이다. 우린 안에서도 밖에서도 온통 경쟁과 빠름을 곁에 두고 산다. 그래서 그것을 사치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들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잠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주어진다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그 답을 제시한다.
 
 
 
노력이 대우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과정이 ‘진심’이란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시작일 뿐이다. 영화 속 혜원(김태리)도 노력과 과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고 싶어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요양을 위해 내려 온 시골. 가장 가까운 가게가 자전거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산골 중에 산골이다. 조용하고 아늑하며, 시간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심심하고 따분한 곳이다. 같은 일상이다.
 
아버지 사망 후에도 엄마(문소리)는 서울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혜원은 불만이다.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악다구니다. 그저 엄마는 처마 밑에 매달린 곳감을 주무른다. “이렇게 주무르고 주물러야 겨울 쯤 맛있는 곳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언제나 엄마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만 한다. 혜원에게 엄마는 느낄 수 있지만 모르는 존재 같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사라졌다. 편지 한 장을 남겨 두고 혜원의 곁을 떠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렇게 혜원은 홀로 지냈다. 왠지 모르지만 혼자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한다. 집을 두고 혜원은 서울로 향한다. 작은 마루 뒤 유리 문 너머로 떠나는 혜원의 모습이 슬프다. 발걸음이 무겁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시골집이다. 즐거운 서울 생활이 남았다. 대찬 시골 처녀답게 씩씩하다.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 성격 그대로 매일 매일 남자친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챙긴다. 둘 다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남자친구는 합격했다. 혜원은 떨어진다. 남자 친구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혜원의 관심이 부담스러움을 토로한다. 혜원의 생활은 그 때부터 하나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홀로 안자 먹는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도시락의 퍽퍽함처럼 그의 삶 속 활기도 식어가기 시작한다.
 
혜원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에 활기를 불어 넣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가 몰랐다. 그 활기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자신만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활기는 말라갔다. 남자 친구의 진심을 알게 된 게 우울함의 밑바닥이 아니었다. 고대하던 임용고시 탈락이 실패의 쓴 맛이 아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주하는 취객의 행패가 삶의 패배감을 가져온 게 아니다. 혜원은 스스로가 소비되는 것을 몰랐다.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야 할 그 ‘무엇’이 이젠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음을 몰랐다. 무엇보다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혜원의 독백(설명)과 한적한 시골 혜원의 집. 그리고 비어 있는 쌀독, 여기에 눈밭 속에 파묻힌 한 겨울 봄동(배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뚝딱 거려 만들어 낸 심심해 보이는 배춧국 한 그릇.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기분 좋고 드러누운 시골 집 마루. 옆에선 장작 난로가 따뜻한 열기를 내고 있다.
 
별다른 내용도 없다. 오히려 심심하다 못해 맹물 같다. 그럼에도 시작인 이 장면부터 ‘리틀 포레스트’는 말한다. 그저 자신을 위해 한 그릇 따뜻한 그 맛 그 대로의 무언가를 만들 여유 정도는 갖는 것도 좋다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런 느낌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추운 겨울부터 시작된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고향집 컴백 살아가기는 피식거리는 웃음부터 되도 않는 피식거림까지 다양한 유머를 선사한다. 사실 유머라기 보단 우정이고, 우정이라기 보단 솔직함에 가깝다. 혜원의 소꿉친구 재하(류준열), 은숙(전기주)의 포장되지 않은 감정은 혜원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상처만 낼 줄 알았던 혜원의 팍팍한 삶의 빠름은 재하 그리고 은숙의 느림 속에서 점차 답을 찾아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몸이 힘들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며 혜원에게 던지는 재하의 말 한마디가 어쩌면 그런 속내를 알아챈 우정이고 솔직함일 것이다.
 
그런 친구들의 솔직함에 혜원은 음식으로 소통을 대신한다. 솜씨 좋은 엄마의 유전자를 대물림 한 것인지, 아니면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혜원은 어릴 적 엄마의 기억을 음식으로 쏟아낸다. 그 기억은 친구들과의 대화이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왜 이 곳에 내려왔는지”라고. 한 겨울 추위에 엄마가 꼭 만들어 먹던 막걸리는 친구들과의 추억 나눔이 됐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엄마가 보낸 편지 속 ‘감자빵’ 레시피는 알 듯 모를 듯했던 엄마의 기억이다. 눈물 나게 매운 떡볶이는 은숙과의 통쾌한 수다 한 판이다. 생크림 케이크 뺨을 후려칠 삼단 떡 케이크는 오랜만의 재회한 친구 재하 은숙 같은 느낌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렇게 겨울부터 시작한 혜원의 시골집 생활기는 봄을 거쳐 여름 그리고 겨울이 됐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향한 혜원. 혜원은 전보다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서울의 팍팍한 일상은 여전하지만. 그리고 다시 찾아온 시골집. 언제나 똑같은 그 곳의 풍경. 그대로 있는 그것들. 그리고 집에 들어선 혜원의 눈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다. 엄마가 어릴 적 혜원에게 했던 말이다. “이 곳을 아직 떠나지 않는 것은 널 이 곳에 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그 눈가의 미소가 그 뜻을 알게 됐음을 말하는 것일까.
 
‘리틀 포레스트’, 어쩌면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 언제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일까. 그저 쏟아내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채우면 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각자에게 돌아갈 그곳에서 소복소복 채우면 된다. 바로 자신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에서. 개봉은 오는 28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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