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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에 절은 조종사들)미국·유럽·호주, 꼼꼼한 비행 설계로 피로관리 '만전'

생체리듬 고려해 시간 규제…집중 어려운 시간에는 비행단축

2018-03-1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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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 주요국들은 조종사의 비행시간과 관련한 까다로운 규제장치를 두고 있다. 장시간 비행이 조종사의 건강은 물론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번의 실수로 대형 참사까지 이어진 항공 사고의 선례를 고려해 규제장치가 시급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11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생체리듬을 고려해 비행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항공승무원의 근무시간이 늘어날수록 사고위험이 증가한다는 인식이 규제를 만든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수면과학의 원리를 반영해 비행시간, 휴식시간을 설계했다. 비행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에는 비행시간을 단축해 피로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게 기본 골자다.
 
비행시간을 가장 까다롭게 운영하는 나라는 호주다. 호주는 비행근무 시작시간과 기내 휴식시설 등급에 따라 비행시간을 다르게 운영한다. 비행기가 실제 이륙하는 시간이 아닌, 비행을 위해 근무를 시작하는 시간이 기준이다. 구간은 총 5개로 나눴다. 가장 비행시간이 적은 구간은 오후 4시부터 오전 5시59분까지다. 비행시간이 최대인 구간은 오전 8시부터 오전 11시까지다.
 
최저시간대 조종사가 3명인 경우는 9시간에서 12시간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최대시간대 비행시간은 13시간에서 14시간 사이다. 기내 휴식시설의 등급도 1~3등급으로 분류해 비행시간을 달리 운영한다. 1등급과 3등급의 비행시간은 3시간30분까지 벌어진다. 기내 휴식시설이 열악할 경우, 쉬어도 조종사의 피로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조종사가 시차에 적응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비행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구간운항 횟수도 7개 구간을 마련해, 횟수가 많아질수록 비행시간이 점차 줄어든다.
 
미국은 근무시작 시간과 야간비행 여부가 비행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오후 8시부터 오전 4시59분까지 야간시간은 최대 비행시간이 8시간(조종사 2명 기준)이다.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1시간 늘어나 9시간까지 비행할 수 있다. 시간대를 5개의 구간으로 나눠 촘촘하게 설계했다. 조종사가 시차 적응이 어려운 노선을 운항할 때는 비행시간을 30분씩 단축한다. 비행 대기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항공기 상태, 기상 악화로 대기시간이 길어져도, 14시간을 초과해 대기할 수 없다. 이를 초과할 경우 승무원을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유럽 국가는 기내 휴식시설의 등급에 따라 비행시간을 단축하는 규정만 두고 있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탑승하는 조종사 인원에 따라 비행시간이 달라진다. 미국은 조종사 3명 탑승 시 13시간, 4명 탑승 시 17시간까지 늘어난다. 호주는 3명 탑승 시 14시간(휴게시설 1등급), 4명 탑승 시 16시간(휴게시설 1등급)이다. 휴식시설 등급이 내려가면, 비행시간도 함께 단축된다. 의자의 각도도 휴식에 영향을 미쳐, 휴게시설의 등급을 설정해 비행시간을 달리한 것이다. 비행시간을 늘리려면 항공사는 휴식시설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는 조종사 탑승인원이 3명(14~16시간), 4명(15~17시간)인 경우에 따라 차등을 둔다. 기내 휴게시설 1등급과 3등급의 비행시간 격차는 2시간이다. 특히 시차적응 상태를 B(출발지 현지시간에 적응된 상태), D(다음번 근무하는 출발지 현지시간에 적응된 상태), X(시차적응 여부 알 수 없는 상태)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휴식시간에 대한 규정 또한 엄격하다. 휴식시간 기준을 정하면서 모기지와 타지를 구분한 점이 눈에 띈다. 미국 항공사는 시차가 4시간 이상 발생하는 곳에서 168시간을 초과해 일할 경우, 복귀 후 56시간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유럽 항공사는 4시간 이상 시차가 나는 곳에서 비행하면, 모기지로 복귀한 뒤 2일밤의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은 6시간 이상 시차가 날 경우 2일을 쉬는 규정을 뒀다. 
 
미국은 7일 중 30시간을 연속해 쉴 수 있게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비행근무 후 10시간의 의무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이중 8시간은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휴식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 항공사는 근무(대기 포함)를 배정해선 안 되다. 승무원도 항공사의 요청을 수락할 수 없도록 했다. 유럽과 호주의 조종사는 비행 시작 전 각각 12시간과 8시간의 휴식을 의무적으로 취해야 한다. 중국 항공사는 자정(현지시간 기준) 이후 비행이 끝날 경우 12시간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이들 국가가 최대 비행시간과 휴식시간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규정은 획일적이라는 게 조종사의 공통된 설명이다. 근무시작 시간과 여건에 따라 비행시간을 단축하는 제도도 도입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조종사 3명 탑승 시 최대 비행시간이 17시간, 4명이 20시간이다. 주요국들보다 비행시간이 길지만, 이를 규제하는 제도는 별도로 없다. 휴식시간도 비행 시작 전 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는 규정이 전부다.
 
국토부는 이달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4시간 이상 시차가 나는 곳을 비행하면 비행시간을 30분 단축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그럼에도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피로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비행을 오래하니 이런 생활패턴이 익숙해 피로를 느끼는지도 모를 정도"라며 "이렇게 일하다 보면 종종 이러다 죽겠구나 걱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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