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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우

(피플)"조종사 피로관리는 사고 예방의 기본"

경력 35년 베테랑 민성식 민간항공조종사협회장

2018-03-23 06:00

조회수 : 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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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조종사가 피로하다고 바로 사고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항공기 상태가 나쁘고, 기상도 나쁘다고 가정했을 때 조종사가 정확하게 판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피로는 조종사의 상황 판단에 영향을 준다." 민성식(56)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회장은 35년 동안 항공기를 운항한 베테랑 조종사다. 12년 동안 공군에서 전투기를 조종하고 1995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23년 동안 대형기를 운항했다. 반 평생을 조종간을 잡은 셈이다. 그는 2016년 협회장을 맡아 조종사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적잖은 과제가 얹혀있다. 조종사들은 장시간 비행과 스케줄 근무로 인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승객은 갈수록 늘고 시장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수요를 충당할 조종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19일  서울 협회사무실에서 민 회장을 만나 최근 국토부가 추진하고 있는 조종사 피로관리 대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운항 중 졸음을 느낀 경험이 있나.
화물기는 밤에 출발한다. 하룻밤에 중국에 들렸다 뉴욕, 시카고에 가는 노선이 있다. 졸음이 확 깨면 좋겠지만 사람의 컨디션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한번은 관제탑의 지시를 적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잠에서 깨려고 애를 쓰는데 쉽지 않더라. 졸음을 참으며 쓰긴 썼는데, 제대로 받아적지 못했다. 매일 같이 시차가 다른 지역을 가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깨어있지만 깬 상태가 아닌 경우가 적잖다. 착륙 직전에 존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민성식 조종사협회 회장이 조종석에 앉아 있는 모습. 사진/조종사협회
 
조종사의 피로는 근무하는 항공사에 따라 다른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10시간 이상 걸리는 미주, 유럽 노선을 취항한다. LCC는 좋은 시간대에 슬롯(항공사별로 할당된 비행 스케줄)을 얻기 어려워 야간비행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새벽에 출발하고, 현지서도 새벽에 뜬다. 승객들이야 졸면서 올 수 있지만, 조종사는 도착할 때까지 깨어있어야 한다. 몇 시에 출발해 어디 가는지에 따라 피로도가 다르다. 어떤 날은 비행을 8시간하고, 잘 쉬어서 컨디션이 좋다. 피로가 안 풀린 상태에서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면, 최소 휴식을 취해도 피로가 누적된다. 의지만 갖고 피로를 풀 수는 없다. 
 
피로는 승객 안전에 영향을 미치나.
조종사는 3차원의 공간에서 고도, 속도, 경로 등을 판단해 비행기를 조종한다. 사람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렵다. 지상에서 커피 마시면서 몇 개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과 3차원의 공간에서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고도, 속도 등에 따라 상황별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무리한 스케줄로 피로가 누적되고 풀리지도 않은 상태라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에서 비행이 계속 연결되면 조종사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조종사의 컨디션이 나빠도 항공기와 날씨가 받쳐주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받쳐주지 않는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중 사고가 날 수 있는 원인을 하나라도 제거해야 한다. 조종사가 피곤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항을 하지 않게 해야한다. 이로 인해 운항 중 정확한 판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국토부에서 조종사의 피로 경감을 위해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사는 적은 조종사를 데리고 비용을 줄이고 싶고, 조종사는 평생 비행을 해야 하니 안전하게 하고 싶어한다. 비행시간(승무시간) 1시간을 단축하는 게 지금 논의의 핵심이다. 현재 13시간(조종사 3명 기준)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현재는 조종사 1명당 8시간40분씩 비행을 하는 셈이다. 1시간 줄이면 비행시간이 40분이 줄어든다. 그런데 항공사는 외국도 13시간을 비행한다고 강조한다. 13시간 비행은 외부조건들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이들 나라는 시차 적응이 어려운 노선을 운항하거나, 야간에 출발하면 비행시간을 단축한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의 기준은 하나도 없는데, 단순하게 비행시간만 논의한다. 조종사와 항공사의 이견이 크다. 국토부는 안전을 선택하는 게 맞다. 그런데 국토부는 40분을 더 비행하는 게 얼마나 더 피곤한지 증명을 하라고 얘기한다. 비행시간을 늘려서 비행을 해야 하는 논리를 좇는게 맞나 싶다.
 
항공 수요는 늘고 있는데, 조종사가 부족한 구조적 문제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항공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2배 이상 발전할 거라는 예측도 있다. 항공사는 비행기를 사들였고, 노선도 대폭 늘었다. 예전은 군 출신 조종사가 전역한 뒤 항공사로 이직했다. 민간에서 조종사 교육을 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채우기는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실제 조종사가 더 필요한 지도 의문이다. 한달에 평균 75시간의 비행시간을 받는다. 연간으로 1000시간까지 운항할 수 있다. 연간 목표 비행시간을 넘어가지 않으면 충분한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는 거다. 휴식시간과 비행시간을 조정해, 스케줄을 짜면 현재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비행시간 단축을 반대하려고 결과를 만들고 얘기를 하니, 논의가 진전이 안 된다. 비행시간 단축시 조종사가 왜 이만큼 필요한지 데이터를 요구하면,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주요국 조종사들도 이만큼 비행하니, 주요국 수준으로 맞추자고 한다. 외국에서 운영하는 제도들은 도입하지 않고, 비행시간 얘기만 한다.
 
우리나라 조종사가 외국 조종사보다 피로한가.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과 제도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다른 도시로 이동할 경우 서너 시간이 걸린다. 한번 이착륙을 하면 더 비행을 할 수 없다. 한국은 땅이 좁아 서울, 제주, 부산 등을 하루 동안 4~5회를 이동할 수 있다. 하루에 너댓번을 이착륙을 하면 피로가 상당하다. 대한민국의 조종사는 다른 나라 조종사보다 피곤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승객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니, 비행시간 제한을 바꾸려는 걸 반대하는 거다. 비행 스케줄을 받을 때마다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는 환경에서 일할 수 없지 않나. 조종사에게 무리를 주는 방식으로 승객의 수요를 충족해선 안 된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우리나라 항공산업 안전하다. 하지만 베테랑 조종사도 실수할 수 있다. 날씨가 원인일 수도 있고, 피로가 원인일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항공시장이 커지는 반면 조종사의 근무여건은 오히려 힘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항공산업의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관리감독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피로관리와 인사관리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할지, 비행안전을 어떻게 담보할지 고민해야 한다.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 피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비행 전과 비행 후 조종사의 신체를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도 연구를 하고 있지만, 외국 수준에 못 미친다. 
 
민성식 조종사협회 회장. 사진/조종사협회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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