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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LIVE다이어리)봄비 내리던 밤, 밴드 넬과의 조우

4월8일. 봄비 오던 밤. 은은한 라일락의 향기

2018-05-25 16:00

조회수 : 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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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어쿠스틱 공연 'home' 무대. 사진/권익도 기자

'회색'이 선연했던 날이었다. 짙게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사납게 비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커튼을 위로 젖히던 나는 다시 제자리에 두고 눕는다. '그래, 아직은 아냐.'
어둠 속에서 눈을 뜬 나는 다시 밖을 본다. 무채색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다. 빗줄기가 줄어들긴 했지만 바람은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계속 불어 댔다. 나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없었더라면 후드를 뒤집어 쓰고 라면을 끓여 먹어야 했을 날씨.
하지만 이날 저녁은 한 달 전 예매한 밴드 넬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몸을 일으켜야지, 올림픽공원역까지 가야지, 그래 그래야지....
공연 취재를 하다보면, 사람들은 묻는다. '피켓팅'을 하지 않으니 즐겁지 않냐고. 물론 그걸 '어드밴티지'라고 본다면 즐거워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도 만약 한 번 더 진지하게 내게 묻는다면 말할 것이다. '마냥 즐겁다'라 말할 수는 없다고.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머리 속은 도화지가 된다. 볼 때는 마냥 즐거운 것이 소화시켜 글로 토해내려면 그 때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공연을 볼 때는 항상 노트북, 핸드폰을 동시에 켜고 있는대로 그때 그때 떠오르는 감상을 단어 형태로 적어두는 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대형급 스타들의 독특한 말, 제스처, 퍼포먼스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자연히 땀을 삐질 거리는 긴장 상태로 보게 되는 공연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세상에는 제일 재밌고, 즐겁고, 마음 편한 공연이 있다. 바로 내 돈 주고 가는 공연이다. 열심히 마우스를 누르며 '피켓팅(피 터지게 티켓팅한다는 줄임말)'도 해보고, 편한 자리에 앉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지정석에 앉아 관람하는 것이다. 공연 중 땀을 삐질 거릴 이유? 긴장 상태에 있을 이유? 마감의 압박을 느낄 이유?
없다. 기타도 보고, 드럼도 보고, 베이스도 보고, 건반도 보고, 전체의 조화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그 자체를 느끼고 감상에 푹 빠지다 돌아올 수 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잠시 접속이라도 하는 듯이.
이날 넬의 공연은 후자에 속했다. 비 바람에 젖은 내 자신의 궁색이 초라하게 여겨질 무렵 공연장에선 라일락의 은은한 향이 났다. 고급 요리의 접시 위를 플레이팅하는 것 마냥, 무대 위로 꽃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따스한 조명들이 무대를 휘감았다.
밴드는 봄밤에 어울리는 곡들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려줬다.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포근함. 속으로 '노트북과 핸드폰 녹음기여 안녕'을 외치며 젊은 남녀에 뒤섞여 일탈감과 해방감을 짜릿하게 누렸다. 자연스러운 감상의 세계는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 왜 이 글을 쓰게 된 걸까. 기승전 리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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