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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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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세상이 바뀌었다!

2018-04-24 11:48

조회수 : 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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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 회장이 지난 22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 현아·현민 두 딸을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키고 전문경영인 등용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 준법위원회 구성을 약속했다. 관세청이 관세 포탈 혐의로 조 회장 일가의 5년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뒤지고 압수수색 등 전방위 사정에 나서자, 마지못해 꺼내든 조치였다. 
 
조 회장으로서는 두 딸의 퇴진으로 이번 사태가 종결되길 바랐겠지만, 도무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철없는 막내의 물벼락 갑질에서 촉발된 파문은 해외 명품 밀반입으로 비화됐다. 세관당국과 결탁해 총수 일가의 짐을 통관절차 없이 빼내는 과정이 한 시민의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혔다. 조 회장 일가의 폭언에 참다못한 대한항공 승무원 등 임직원들은 연일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숨겨진 화약고였던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의 횡포도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냈다. 직원들은 이조차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무릎을 꿇리고 고함과 함께 뺨을 때리며, "세트로 잘라야 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하인처럼 부리던 을의 반란에 조 회장 일가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여론도 등을 돌렸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은 성난 민심으로 들끓고 있다. 대한항공의 상징이었던 '대한' 사명, '태극' 문양과 함께 국적기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조현민씨 추방 서명도 시작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충격적 소식에 대한항공을 타지 않아야 한다는 불매운동도 번질 조짐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일단락되고 늘어나는 여객 수요에 모처럼 맞은 호기도 날려버리게 됐다. 대한항공 내부에서조차 "어느 선에서 끝날지 종잡을 수 없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잘못된 판단과 조치는 조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땅콩회항'의 후유증을 앓았음에도 당사자인 장녀 조현아씨를 조기에 경영 일선에 복귀시켰다. 최소한 집행유예 기간은 끝나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일부 제기됐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이를 통해 깨달은 학습효과도 없었다. 차녀 조현민씨의 물벼락 갑질이 세상에 알려진 지 10일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논란이 일자마자 사퇴시키고 국민과 피해자에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한항공 관계자는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제왕처럼 군림하는 회장 일가에 누구도 바른 말을 하지 못했으며, 그저 하명대로 따를 뿐이었다.
 
일부는 이번 사태를 가리켜 한국 특유의 오너기업 폐해라고 지적한다. 폐해도 폐해 나름이다. 조 회장 일가에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다. 내 회사인데, 내 비행기인데, 내 직원인데, 내 돈인데 마음대로 못할 게 어디 있느냐는 천박한 선민의식의 발로였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주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을 만났다.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등 모든 걸 법대로 할 뿐이라는 말에 "과연 삼성이?"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조 회장 일가는 과거의 제왕적 행태에 취해 넋을 놓고 있었다. 그 대가는 참혹한 현실이다.
 
김기성 산업1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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