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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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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금강산 여행의 추억

2018-05-13 09:02

조회수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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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대학생때 금강산에 갔던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옛날 노트북를 뒤져보니 사진이 남아 있더군요.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던 날 직전후였습니다.

남북출입소 주변입니다. 통일전망대 너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러 경계의 앞에 섰습니다. 이때만해도 금강산에 잘 가던때라,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북한으로 올라가는 길엔 사진이 없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병사가 감시하고 있는데 사진 찍다가 걸리면 버스를 세우고 억류한다고 경고 했습니다.
창문 밖을 볼 수는 있었는데,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 전부였고, 그 산을 깎아서 장사정포를 셀수 없을 정도로 배치해놨습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거짓말이 아니었더군요. 긴장했습니다.

아, 북한으로 가기 전에 주의사항을 교육받았습니다. 남한북한이 아니라 남측북측이라고 칭할 것. 휴대폰 등 모든 통신기기 반입금지, 사진찍지 말라고 하는 곳은 절대 금지 등.

그리고 민간 지역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버스 창문 너머로 학교에서 축구공 차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놀랄 일은 아닌데, 북한에서도 공을 차고 노는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반공교육을 잘못받은 탓입니다.

외금강 호텔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때 가족들의 숙소로 이용된 곳이라고 하던군요.



호텔 주변에 있는 농협 출장소와 면세점입니다. 농협에서는 환전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 가게에서는 미국달러만 받기 때문입니다. 면세점에서는 머루를 담근 술을 샀고,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직도 술장에 있습니다.



금강산 등산로 입구 '금강문'입니다. 



여기가 금강산인지 설악산인지, 긴가민가할때 힙한 바위들이 등장합니다. 



막걸리입니다. 등산로에선 안내원들이 막걸리를 잔 단위로 팔았습니다. 한잔에 2달러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안내원에게 나이를 물어봤습니다(예뻤습니다). 그녀는 제 신상이 적힌 명찰을 보더니 저보다 한살 어리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사람과 처음 말해봤습니다. 그녀는 우리들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만물상입니다. 울산바위가 만물상에 끼지 못하고 설악산으로 갔지요. 




금강산에 다녀온지도 벌써 십년이 됐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금강산에 다시 올 것이라고 다짐했었는데, 이듬해 정권이 파뀌고 피격사건이 터지면서 금강산으로 가는 문이 닫혔지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동안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가족도 생겼습니다. 부모님은 이제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금강산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내 의견을 가족들은 별로 탐탁지 않아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산을 싫어해서지. 금강산에서 친해진 친구들이 그립네요. 지금쯤 같은 추억을 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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