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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현장에서)법정으로 간 #미투, 2차 피해 막아야

2018-07-1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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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의 산물이 하나 둘 법정에 서고 있다. 대표적 가해자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도 피고인 신분으로 지난 9일 있었던 공판준비기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감독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3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8명을 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의 죄는 크게 두가지인데, 안마를 가장한 상습강제추행과 연기연습을 빙자한 유사강간치상이다. 보통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분명하면 피고인은 감형을 받기 위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취지로 몸을 낮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전 감독에게서는 반성의 기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 감독의 변호인은 공판기일에서 1996년부터 성추행이 있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부분은 양형에 불리하기 때문에 논외로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피해자들이 가명으로 피해사실을 적은 조서에 대해서도 가명이라 믿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오랜 합숙으로 피곤해 안마를 받은 것이고 강제추행은 사실과 다르다. 피해자들의 법정 내 신문이 필요하다” 피해자에 대한 신문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있을 피해자들의 증인신문에서 이 전 감독 측이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을 흔들기 위해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법정을 통한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법정에서는 지금도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문제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공판이 진행된 한 성범죄 사건만 봐도 그렇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성폭행 당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여성에게 ‘왜 동맥이 아닌 정맥을 그었느냐’고 질문했다. ‘보여주기 식’ 자살 시도 아니었느냐는 취지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공격이지만, 피해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와 모욕을 또 한 번 당한 것이다.
변호사는 피고인인 의뢰인의 무죄 선고를 위해 또는 감형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의무다. 그러나 피고인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정한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다시 2차 피해를 줄 위험성이 큰 경우에는, 직업적 양심에 충실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
현재 법원에서는 성범죄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때 피고인을 퇴정시키고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하는 등 나름대로의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투 운동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번 사건들은 그 특성상, 재판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사법부로서는 이번 기회에 성범죄 피해자의 법정 내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강력한 매뉴얼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가 #미투 운동이라는 사회적인 큰 물결 위에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얻는 길이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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