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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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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빼앗긴 아픔, 2차전지로 달랬다

빅딜로 반도체 내주고 두문불출…2000억 적자에도 "길게 봐라" 2차전지 개척

2018-05-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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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20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은 전자·화학 등 핵심 사업군을 구축해 LG를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렸다. 고 구인회 회장이 1947년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서 출발한 LG는 구자경 명예회장에서 한국 대표 대기업으로, 구본무 회장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LG그룹 매출은 1995년 구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GS와 LS,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인 점을 감안하면 놀랍다는 평가다.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명에서 약 21만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이중 8만여명이 200여개의 해외 현지법인과 70여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 평생의 한(恨) '반도체'
 
구 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부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구 회장의 가장 뼈아픈 한은 외환위기 직후 정부 주도로 이뤄진 '반도체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중도에 접은 것이다.
 
LG는 1989년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 반도체사업을 시작했다. 금성일렉트론은 1995년 LG반도체로 상호를 바꾸고 1996년에는 증시에 상장하는 등 LG의 새로운 주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19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기를 맞아 고속성장하며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부가 '재벌 빅딜'에 나서면서 위기를 맞는다. 빅딜은 외환위기를 몰고온 재벌들의 중복투자와 과다부채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대기업 간 대규모 사업교환으로, LG반도체는 현대전자와 메모리반도체 통합을 추진하면서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당시 LG 구조조정본부는 재무구조, 기술력, 전문성 등 모든 면에서 객관적으로 LG반도체가 앞선다는 점을 들어 경영권 확보를 강하게 주장했고 구 회장도 반도체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지만, 1999년 7월 LG반도체 지분을 현대전자산업에 넘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빅딜을 통해 탄생한 회사가 현재의 SK하이닉스다.
 
구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넘기고 그 충격에 두문불출한 사실은 지금도 회자된다. 반도체 빅딜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전국경제인연합과도 척을 지고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라이벌 삼성이 이후 반도체사업을 발판 삼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의 경우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현 매출 규모는 4분의 1, 영업이익은 20분의 1 수준이다. LG는 2007년 발간한 60년 사사(社史)에서 "빅딜 강제는 통합법인(하이닉스) 출범 이후 모습에서 나타났듯 한계사업 정리와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왔고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이라고 반도체 빅딜을 비판하기도 했다.
 
2000억 적자에도 "길게 봐라"…2차전지 개척
 
구 회장은 반도체에서 못 다 이룬 꿈을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서 구현했다. 과감한 투자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LCD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1999년 8월에는 당시 국내 기업이 유치한 외국 자본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던 16억달러를 필립스로부터 유치해, 합작사 LG필립스 LCD를 출범시켰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2008년에는 단독법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켜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서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한 뒤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90년대부터 수년간의 투자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2005년 2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을 때도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임직원을 격려했다. 그 결과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됐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중대형 분야 세계 1위, 자동차 배터리 분야 세계 4위다. 20여년간 세계 1위에 오를 때까지 끈질기게 연구개발을 밀어붙인 결과다.
 
영속기업 LG 기반 닦아…LG사이언스파크 진두지휘
 
LCD 사업 초창기에 과감한 합작사 제안으로 돌파구를 열고 LG화학을 세계적 2차전지 업체로 변모시킨 구 회장은 영면에 들기 전까지 연구개발과 인재육성 등 미래에 투자했다. 특히 자동차부품 분야는 계열사별 강점을 바탕으로 전문 분야를 육성토록 지시했다. LG화학의 배터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LG전자가 전기차 부품 및 인포테인먼트 부품을, LG디스플레이가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LG이노텍이 차량용 모터와 센서를 이끌도록 했다. LG의 전체 자동차부품 매출도 2013년 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15년 4조원, 2016년 6조원, 2017년 8조원대에 육박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는 구 회장이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대규모 프로젝트다. 총 2만2000명의 연구인력들이 집결해 융복합 기술 연구 및 핵심·원천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이 곳은 LG의 시장선도 제품과 차세대 성장엔진을 발굴하는 첨단 연구개발 메카 역할을 수행한다. 1등 LG를 향한 구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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