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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kjb517@etomato.com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치료조차 불가능한 그 무서운 질병에 걸리다니

2018-05-23 17:59

조회수 :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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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각성을 하면서……”
“제작비는 이쪽에서 이 정도로 이렇게 투자를 받고…..”
“연출은 지금 A감독을 생각 중인데 B감독도 괜찮은 것 같아요….어때요?”
“주인공은 C씨가 난 괜찮을 것 같아요. 근데 이미지적으로는 D가 좋은데 요즘 D에 대한 소문이 별로야…..”
 
23일 오후 만난 한 관계자다. 시나리오 모니터링과 관련해 한 배급사 관계자와 만나 점심을 함께 한 뒤 우연히 연락이 맞닿아서 오랜만에 보게 된 지인이다. 꽤 탄탄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영화 쪽에 의외로 발도 넓다. 혹시라도 아는 지인이 볼 수도 있을 듯 해서 성별이나 이름은 적지 않겠다.
 
갑자기 사직을 생각 중이란다. 아니 이미 결정을 했다. 지긋한 나이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꿈꿔오던 영화를 시작해야겠단다. “에휴 이 양반도 결국 물이 들었군”이란 생각이 들면서 “자, 이 보세요…”라며 나의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20분의 침 튀기는 호소와 말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고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내게 보인다. 시나리오다. 작가는 꽤 이름이 있는 모 작가다. “이거 돈 주고 산거야?” 그는 묘한 웃음만 지으며 다시 내게 절절한 설명만 늘어 놓는다.
 
본 사진은 글 내용과 전혀 무관함을 알립니다. 사진/영화 '버닝' 현장 촬영 스틸.
 
시나리오와 함께 건낸 3장 짜리 시높시스를 훑어봤다. 미안하지만 이건 300프로 망삘이다. 가끔씩 유명 작가들도 망작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다. 아주 드물지만 이런 작품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필명으로 이 지인과도 같은 영화병 걸린 사람들에게 헐값에 넘긴단 얘기를 듣기도 했다. 조건은 자신의 이름이 절대 공개되지 않는단 조건으로. 물론 내가 본 시나리오에는 다른 필명이었지만 이 지인이 펜으로 그 작가의 실명을 갈김체로 적어 놨다. 본능으로 이 케이스인 것을 알게 됐다.
 
“그래..그래서 어쩌실려고….할려고?”
 
그는 나와 친분이 있는 감독 및 배우들과의 연결을 요구했다. 물론 그 대가로 이른바 뽀찌까지 약속했다. 거마비라고도 하는.
 
“오늘 먹은 커피값 여기 있어요”
 
미안하지만 설득이 안되는 상황이라. 또 혹시 모를 구설에 먼저 계산해 가져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값(내가 200원 더 줌)을 탁자 위에 놓고 자리를 떴다. 자신과 같이 일할 프로듀서라고 하면서 누군가를 불렀다. 잘못 엮이면 골치 아프겠단 생각에 그냥 바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오면서 이 지인의 핸폰 번호를 수신 차단으로 돌렸다. 경험상 이 지인, 큰 돈 날린다. 그리고 그 후에 책임을 돌릴 주변 사람을 찾는다. 이런 케이스 정말 수도 없이 봤다.
 
“기자님 연락하께!!!”
 
이 말에 대꾸도 안하고 나오면서 5000원짜리 한 장 탁자 위에 놓고 왔다. “오늘 커피는 그냥 내 돈으로 먹은 걸로 하께”라며 뛰어 나왔다. 그리고 번호 차단. 잠잠하던 내 주변 지인들의 영화병이 다시 도지나 보다.
 
 
사진: 글 내용과 전혀 무관함을 알립니다. (영화 '버닝' 촬영 현장 스틸)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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