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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재판 전략' 꺼낸 MB…검찰, 유죄 입증 쉽지 않다

"검찰심문 거부, 재판부 부르면 나가겠다"…박 전 대통령과 차별화

2018-05-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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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110억원대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의 공판에서 조사기일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의 심문에는 출석해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을 변호하고 있는 강훈 변호사는 25일 “증거조사 기일 중 재판부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날을 제외한 나머지 기일에는 불출석 하겠다는 것이 이 전 대통령 입장”이라면서 “오늘 오후 이런 내용의 불출석사유서가 재판부에 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접견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이런 의사를 확인했고, 불출석 사유서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재판 거부 아니다"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면서 “‘언제든 법정에 나가 진실이 무엇인지 검찰과 다투겠다’는 것이 이 전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검찰이 제출하는 증거 내용을 설명하는 조사기일에는 출석의 필요성이 없는 듯 하기 때문에 건강상태를 고려해 불출석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법원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니 출석해 달라는 요청을 변호인을 통해 하면 그 기일에는 출석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이런 결정은 재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공판 중 검찰이 주도권을 쥐는 조사기일에 나가 허점을 공격당하는 것을 피하는 동시에 소송 진행에는 적극 협조해 재판부와 척을 지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재판부 유무죄 판단에 영향
 
이런 전략은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에도 결과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검찰이 비록 구속 기소하는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조사를 한사코 거부해 기소 전 구속기간 동안 한 번도 조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속 전 수사도 단 한 번의 소환 조사로 그쳤기 때문에 18개 공소사실 중 충분한 범죄소명을 하지 못한 혐의도 없지 않다.
 
검찰은 공판을 진행 과정 중 수사단계에서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려 했으나 이 마저 쉽지 않게 됐다. 권력비리 관련 형사소송을 오래 담당한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심문하는 기회에 검찰도 심문할 수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검찰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석해도 검찰 심문에는 '진술거부' 가능성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면, 먼저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다른 혐의를 추가 입증해 구속기간을 연장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의 정치화’라는 이점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재판 보이콧’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이 전 대통령보다 많은 지지 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출석을 전면 거부하면서 사법부를 무시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국정농단 재판’의 정치적 쟁점화에 실패했다.
 
반론도 없지 않다. 한 고위 검찰간부 출신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출석을 거부하고, 출석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검찰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그동안 수사를 통해 확보한 물증과 진술을 소환조사 단계에서 충실히 확인한 것으로 안다. 유죄 입증이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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