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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2018-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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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애교다. 살인이나 감금, 특수폭행 등 중대범죄로 진화한 지 오래다. 매우 심각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말이다. 그는 인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관이다. 경력 10년이 넘는 그 베테랑도 ‘데이트폭력’ 말만 나오면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돼지껍데기를 굽는 불판이 서너번 바뀌어도 ‘데이트폭력’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그의 성토는 수사현장과 수시로 오버랩되면서 계속됐다. 결국 “딸을 가진 아비로서 세상 살기가 겁난다”며 그가 올해 초등학생이 된 외동딸에게 전화를 건다며 나가서야 얘기가 끝이 났다.
 
‘애정을 빙자한 폭력’, 이른바 데이트폭력의 위험성과 가해자의 교활함은 이미 범죄의 본질적 측면에서 내재돼 있었다. 사랑한다는 이유, 배신당했다는 분노, 무시당했다는 열등감이 기폭제가 되는 이 범죄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피해의식과 보복심리의 발현일 뿐이다.
 
데이트폭력 사건은 2014년 6675명에서 매년 1000명 가까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데이트폭력’은 총 1만303건으로 처음으로 1만건을 넘어섰다. 폭행·상해 등 범죄가 73.3%(7552건)로 가장 많았지만 살인미수를 포함한 살인사건도 67건이나 발생했다. 체포·감금·협박도 11.5%(1189)를 차지했다. 고소나 고발이 없어 입건되지 않은 채 묻힌 사건도 상당하다.
 
범죄의 내용도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다. 말이 고상한 ‘데이트폭력’이지 사건에서 ‘남녀관계’라는 막을 걷어내면 처단에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는 중범죄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이른바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하고 피해자가 쓰러지자 트럭을 몰고 피해자를 향해 돌진하기까지 했다. 지난 3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부산 데이트폭력 사건’은 워낙 엽기적이라 ‘사이코패스’ 영화를 무색케 할 정도다. 그나마 경찰청 통계에 나타난 살인이나 살인미수 사건은 언론을 통해 다 보도되지도 않은 상태다.
 
현장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에는 오직 여성을 폭행하거나 협박, 갈취하기 위해 연인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의 데이트폭력범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힘이 없는 인간은 소유한다’는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관계가 지금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이다.
 
사태가 이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오랜 구태요, 악습인 ‘남존여비’ 사상이 1차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 일어난 '미투 운동‘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구태적 사상은 온갖 사회부조리와 범죄의 모태가 되고 있다. 중한 폭력을 ’사랑싸움‘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온갖 뒷말을 늘어놓는 관음적 사회풍토도 문제다. 이 풍토는 ’맞을 짓을 했겠지‘라든지 ’남녀가 사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피해자를 목표로 한 2차 범죄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폭행이나 과실치상 등 데이트폭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범죄는 형법상 반의사 불벌죄다. 이 때문에 그동안 데이트폭력의 수많은 가해자들은 ‘내가 미쳤었나 보다’라며 피해자의 온정과 애정에 호소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검찰이 1일 데이트폭력 사건 처리 강화기준을 발표하면서, 3회 이상 동일 피해자에 대해 데이트폭력을 한 가해자 수사시에는 종전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도 불구하고 구속요건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는 매우 반길 만하다.
 
피해자는 물론, 주변사람들도 데이트폭력에 대해 단호해져야 한다. 온정으로 덮다가는 필시 본인과 가족, 그리고 또 다른 여성이 무차별적인 범죄의 다음 대상이 될 것이다. 특히 피해자들은 '그래도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콩깍지'를 벗어 내던지자. '사랑하기 때문에 때렸다'는 논리는 변태적 발상일 뿐이다. 그에게 당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폭력적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미투 운동 때처럼 용기와 결단을 내릴 때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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