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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전문)김창석 대법관 퇴임사…"무분별한 사법신뢰 훼손 막아야"

2018-08-01 10:40

조회수 : 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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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법원 가족 여러분, 저는 법관으로서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재판에서 내려질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은 하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재판은 결코 합목적적인 여러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밖에 없는 정의를 확인하여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정의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유명한 법언을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반드시 벌하여야 한다는 것은 정의의 요구입니다. 이러한 정의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길지라도 죄가 의심되는 열 명 모두를 처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 또한 강력한 정의의 요구입니다.
 
형사재판을 할 때 유죄라는 심증이 무죄라는 심증보다 우월하더라도 그 심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무죄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무엇이 정의인지 분명하지 않은 때에는 죄를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의 요구가 죄 없는 사람을 벌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정의의 요구에 양보하여야 합니다. 비록 죄를 저지른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감수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켜서 분명하지 않은 정의를 실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하지 않은 정의와 자유가 충돌할 때에는 분명하지 않은 정의를 희생시키더라도 자유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법치국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 상황에서 국가나 사회가 정의라고 보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되더라도 무방하다는 입장에 선다면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와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생각은 형사재판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이 정의인지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끼리 오직 자신들의 의견만이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외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의 의견도 상대를 설득할 만한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갖추지 못하여 여전히 무엇이 정의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 법관은 마땅히 그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희생시켜야 하는 자유나 권리가 무엇인지, 그러한 자유나 권리의 희생이 분명하지 않은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하여 신중한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법관이 이러한 측면을 가볍게 여기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의 관점에만 집착하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가치에서 멀어져 간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법의 중요한 책무인 소수자 보호 또한 다수가 요구하더라도 그것이 분명하지 않은 정의인 경우에는 그로부터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결연히 지켜낼 때에만 비로소 제대로 실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어려운 판단이 내려져야 하는 사건에서, 이와 같이 분명하지 않은 정의와 자유 또는 권리가 충돌하는 장면을 빈번하게 마주쳤습니다. 그때마다 대립되는 주장들이 과연 올바른 의견으로서 정의라고 분명하게 단정할 수 있는지, 그러한 정의 실현을 위하여 희생시켜야 하는 자유나 권리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숙고를 거친 뒤에서야 비로소 어떤 의견을 선택하여야 할지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법관으로서 근본적이고도 궁극적인 고민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자유나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헌법입니다. 법관이 법률의 문언에 따른 단순한 해석자에 머문다면 재판을 통하여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여야 하는 법관의 고귀한 역할은 공허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법률이나 시행령 등을 해석할 때 그 법령에 따른 해석이 부당한 결론을 가져온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관은 먼저 위헌의 의심이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법령에 위헌의 의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그 법령을 위헌이라고 판단하거나 위헌이 아니라고 이분법적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법령에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합헌적 해석을 통하여 그 위헌성을 제거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하고, 단순한 법률해석의 단계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재판에서 헌법적 가치는 합헌적 해석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구현됩니다. 헌법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합헌적 해석을 통한 헌법가치의 실현이 법령의 위헌성 선언을 통한 헌법가치의 실현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하고 보편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저는 6년 전 이 자리에서 대법원이 또 하나의 최종적 헌법재판기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이러한 결심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능력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 대법원을 비롯한 우리 사법부가 수행하여야 할 너무나 중대한 책무이기에 법관으로서 마지막 말씀을 드리는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합헌적 해석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법원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고 오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해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사법작용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32년 동안 법원에서 일하면서 진정 행복했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였다고 말씀 드립니다. 제 곁에서 늘 저를 응원하여 주었던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딸과 아들에게도 미안했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8. 8. 1.
 
대법관 김 창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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