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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록

'직장 내 괴롭힘' 이제는 산업재해

2018-09-19 09:03

조회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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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성심병원 장기자랑, 간호사 태움 문화, 국내 대형 항공사 총수 갑질 등 상사의 크고 작은 폭언·폭행에서부터 사용자의 갑질까지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의 일부 사례를 살펴보고, 현황 등을 파악한 뒤 관련 시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끝내 죽음으로 내몰다


사진/픽사베이

[직장지옥②] “무서운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직장 따돌림’ 당한 아내가 남긴 유서
(민중의소리 기사 읽어보기)

“무서운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렇게 만든 건, 현OO, 김OO, 윤OO"
올해 4월 신한카드에서 직장 내 왕따를 당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직원의 유서입니다.


유족인 남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하고부터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전했습니다.
남편에 따르면 이 직원은 복직 후 갑자기 본사에서 지점으로 발령이 나고, 발급센터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원에게 일을 배워야 했으며, 파견사 직원을 해고하는 '부당 업무'까지 맡게 됐습니다.
파견사 직원 해고는 파견사를 통해 하는 것인데도 이 직원은 직접 해고 지시를 내려야 했습니다. 해고된 직원으로부터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지점장이 다른 사람의 고과를 챙겨주기 위해 이 직원의 고과를 뺏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직원은 업무평가에서 2년 연속 C를 받고, 인사고과에서도 C를 받아 진급의 꿈이 좌절됐습니다.

신한카드 측은 직원의 사고 이후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하겠다"고 전했다가, "160명 중 100여 명이 파견직 사원이라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돌연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남편의 계속된 항의에 "정규직 40~50명은 인터뷰 하겠다"고 다시 약속하더니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또 한 차례 말을 바꿨습니다.
결국 남편은 인터뷰 조사 결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유서에 등장한, 괴롭힘 주도자로 의심되는 3명도 경찰이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지만 응하지 않았고, 경찰은 ‘내사 종결’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 저임금 근로자·비정규직 두 번 울리는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은 저임금 근로자, 그중에서도 특히 비정규직에서 두드러졌는데요.


사진/픽사베이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10명 중 6명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뉴스1 기사 읽어보기)

한국노동연구원이 이달 9일 내놓은 <월간 노동리뷰 9월호>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에 따르면 서울 지역 23개 기관 328명의 노동자 중 193명(전체 응답자의 58.8%)이 '직장 내 괴롭힘'을 적어도 한번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괴롭힘 유형을 살펴보면 관리자들이 사소한 실수를 핑계로 해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합당한 이유 없이 업무에서 배제하는 업무상 괴롭힘을 가장 많이 당하고 있었습니다. 업무상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20.9%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비하 발언, 노동자 간 이간질, 관리자의 사적인 일을 대행하는 인격적인 괴롭힘이 20.1%로 많았습니다.
이밖에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괴롭힘(16.3%) △폭행 위협 등 물리적 괴롭힘(13.7%) △성적인 괴롭힘(10.1%)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은 41.9%, 비정규직은 61.4%로 비정규직의 괴롭힘 비율이 높았는데요.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괴롭힘 경험도 더 많아졌습니다.


성적 괴롭힘의 경우 정규직은 평균 3.8%를 경험한 데 비해 비정규직은 평균 11.0%를 경험했습니다.
물리적 괴롭힘 역시 정규직은 평균 5.8%를 경험했지만, 비정규직은 14.9%를 경험했습니다. 

◆ 고용불안과 제보센터 부재가 괴롭힘 키운다


사진/픽사베이

상사로부터 폭행과 폭언, 왜 정부는 가만히 있나요
(오마이뉴스 기사 읽어보기)

환노위 법안소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처리…산재에도 포함
(머니투데이 기사 읽어보기)

평생직장은 옛말이 됐습니다. 3개월·6개월 호출노동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항은 고사하고, 일을 구할 수만 있으면 천만다행입니다. 
회사가 부당한 일을 지시해도, 상사의 괴롭힘이 이어져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참는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월23일부터 9월7일까지 직장인 15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답변이 전체 73.3%에 달했습니다. '거의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는 답변도 12%를 기록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을 없애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회사에 맞서고, 회사를 견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처참한 수준입니다.

2016년 기준 10.3%인데, 이마저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 집중돼 있습니다.
300인 이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5.1%인데 반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에 불과합니다.

◆ '직장 내 괴롭힘', 이제 산재에도 포함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를 통과했습니다. 
이날 환노위는 산업재해의 범주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 또는 질병을 포함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의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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