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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전쟁 속 꽃핀 조지아 문학…'사람'과 '사랑' 있었네

한반도와 같은 오랜 전쟁의 역사…'고난과 생존' 그려낸 조지아 젊은 작가들

2018-10-18 18:00

조회수 : 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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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그런데 압하지아 놈들이 너를 잡아서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할거야?”
“그들이 나를 왜 죽이겠어?”
“무슨 소리야. 넌 조지아인이잖아?”(누그자르 샤타이제 단편소설 ‘아프리카 여행’ 중)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일제히 독립의 붐이 일었다. 우리에게 ‘그루지야’란 명으로 친숙한 국가 조지아도 그 해 4월 독립 선언을 했다.
 
조지아 북서부 러시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인구 25만명의 공화국 압하지아는 그해 7월 조지아로부터 다시 독립을 선언했고, 조지아 국민들과 유혈충돌을 빚었다. 샤타이제의 소설에 등장하는 난민 소년과 그 친구의 짤막한 대화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당시의 긴장감과 긴박감이 그대로 뚝뚝 묻어 나온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외국문학 출판 임프린트 마음이음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조지아 소설집’을 냈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탓에 수백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던 조지아에 관한 이야기다. 20세기 활동한 조지아 문학의 거장 샤타이제부터 나노 사드고벨라슈빌리, 즈비아드 크바라츠헬리아 등 촉망 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 데 엮었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는 인간의 고난과 생존. 수백년 간 전쟁이 마르지 않던 역사적 배경 탓인지 작가들은 인류의 실존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아프리카 여행’의 주인공은 실종된 아버지를 찾으려는 12세 난민 소년이다. 압하지아와 조지아의 전쟁으로 아버지와 떨어진 소년은 분쟁지역으로 건너갈 결심을 한다. 
 
‘압하지아인들이 조지아인의 피를 마셨다’는 주위의 소문에 마음은 무겁지만,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친구의 말을 실천하며 목적지로 향한다. 위기의 순간은 이따금 찾아오지만 주변인들이 도움을 보태고, 소년은 끝내 최종 목적지에서 아버지의 생존 사실을 듣는다.
 
젊은 여성작가인 니노 사드고벨라슈빌리의 단편 ‘능직 무명으로 짠 낙원’ 역시 조지아의 현대 전쟁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92~1993년 러시아, 조지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이 전쟁에서 숨진 아들을 둔 노파 레나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국가의 비극으로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레나는 급기야 정신병에 걸린 듯한 인물로 묘사되기에 이른다. 
 
조지아의 현대사와 직접 연결돼 있진 않지만 몇몇 소설들은 삶의 고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물 간 ‘사랑’에 집중한다. 
 
테아 토푸리아의 단편 ‘산속의 아침’은 겨울철 눈이 내린 산간 지역에서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가버린 마을에서 노인은 밀가루 포대를 비축식량으로 삼고,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들과 상상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와 같은 날 죽은 다윗도 여기서는 한 번도 못 봤네. 아마 죽자마자 저 세상으로 곧장 간 모양이야. 우린 좀 나중에 가도 되나봐.” “나중에 언제?” “여기서도 죽고 나면 그때쯤.”
 
젊은 소설가 루수단 루하제는 단편 ‘포르자의 손아귀에서’로 역경 속 사랑을 그려낸다. 여성 주인공 아나스타샤를 내세워 인간은 자신이 범법적 행동에 가담한다는 걸 모를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음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전쟁과 침략 속 꽃핀 조지아 문학은 역사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와도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페르시아, 비잔틴, 투르크 등에 침략당하고, 70년 동안 소비에트 치하에서 버티면서 쌓인 ‘한’의 정서가 문학 곳곳에서 배여 나온다. 
 
한국판 번역본의 서문은 조지아의 시인이자 번역가, 출판인으로 활동하는 그반차 요바바가 썼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같은 고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 소설집이 수천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조지아 사이의 거리를 조금은 좁혀줄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몰랐던 조지아 소설집', 사진/마음이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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