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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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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의 순기능과 역기능

2018-11-16 08:38

조회수 :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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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는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순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올해 국감에서도 해묵은 고질병인 ‘비판을 위한 비판’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역기능을 야기할 수도 있는데요. 최근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사퇴가 그런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선동열 감독. 사진/뉴시스
 
선동열 감독의 사퇴는 국정감사가 초래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정운찬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총재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 감독은 14일 KBO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감독직 사퇴를 통해 야구인의 명예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습니다.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또한 저의 사퇴 결심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손 의원의 한마디가 사퇴를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음을 인정한 것인데요.
 
앞서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 선발 논란으로 국정 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었습니다. 당시 손 의원은 지난달 국감에서 "선 감독 때문에 한 달 동안 관중 20%가 줄었다. 사과를 하든, 사퇴를 하든, 두 가지 뿐이다"며 거세게 몰아붙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버티고 우기면 2020년 올림픽까지 감독하기 힘들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또 손 의원은 자신의 SNS에서도 “선 감독을 선의의 피해자로 본 내가 바보였다”며 “우리나라 야구의 앞날을 저런 감독에게 달려있다니요”라고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야구팬들은 '야알못(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손 의원이 날린 비수 때문에 선 감독이 사퇴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여기에 정운찬 KBO 총재의 발언은 선 감독의 사퇴에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정 총재는 ‘국가대표 전임 감독이 필요한가’라는 손 의원의 질문에 “야구는 국제대회가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전임 감독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야구장에 가지 않고 TV를 통해 선수를 관찰한 것은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밝혔습니다. 정 총재가 선 감독이 국감에서 “프로야구는 같은 시간에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TV로 보는 게 낫다”고 한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인데요.
 
정 총재의 이같은 발언에 선 감독도 “전임 감독에 대한 총재의 생각을 비로소 알게 됐다. 제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정 총재를 정면으로 겨냥한 선 감독의 발언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정 총재와 손 의원의 콜라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손 의원은 뜬금없이 "조 토리, 왕정치처럼 스타선수가 감독이 된 사례도 있지만 토니 라루사처럼 선수 때는 유명하지 않은데 훌륭한 감독이 된 사례도 있다"고 물었고 이에 정 총재는 조범현 전 KT 감독을 거론하며 "선수 때 스타가 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우승을 이끈 훌륭한 감독이 됐다. 테드 윌리엄스처럼 훌륭한 선수가 감독으로 풀리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선 감독에서 시작된 질문이 난데없이 조범현 전 감독까지 소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혜원 의원과 정운찬 총재가 안팎에서 선동열 감독의 사퇴에 영향을 미친 모양새입니다. 이번 야구대표팀 병역혜택 논란의 핵심은 운동선수의 병역혜택을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느냐하는 점이었습니다. 감독의 선수기용 자체에 문제를 둔다면 어느 감독이 선수 기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자칫 잘못하면 국감장에도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더욱 국가대표 감독의 자리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국감은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순기능을 합니다. 특정 종목의 국가대표 감독을 부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닐뿐더러 KBO 총재를 국감장에 불렀다면 병역논란에 대한 KBO의 향후 계획, 리그 산업화를 위한 방안 등을 묻는 게 적절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선 감독의 마지막 한마디가 인상에 남았는데요. "국가대표 감독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대한체육회 역사상, 국가대표 감독 역사상, 한국야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스포츠가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례는 제가 마지막이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마땅합니다."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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