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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국회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논의에 노동자들 뿔났다

"사람이 죽는데 법이 무슨 소용인가."

2018-11-16 12:24

조회수 : 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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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논의로 노동자들 반발이 거센데요. 지난 14일 오후엔 급기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사설]탄력근로제 확대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 취지 유념해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와 관련해 정의당이 지난 13일 개최한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에 따른 피해사례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일부 담아 봤습니다. 
 
지난 14일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 ILO핵심협약 비준! 정부선행조치 이행촉구! 노동법 전면개정! 2018 총파업투쟁승리! 민주노총 대정부 시국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김명환(왼쪽 여섯 번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동법 개악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네이버 지회>
해외 유명 게임 개발자는 "개발자의 피로 적셔진 게임은 칭찬해선 안 된다"고 했다. 게임업계에 일상이 된 ‘크런치 모드’(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는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도 매우 자주 발생한다. 크런치 모드가 아니라고 해서 적게 일하는 것도 아니다. IT업계 전반에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다.
 
“사람 갈아 넣지 말아라.”
 
크런치 모드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목소리다. 무작정 근무시간을 늘린다고 생산성이 오르는 시대는 끝났다. 게임이나 서비스 출시 시한을 지키기 위해 장시간 노동하는 건 노동자에게도 서비스에도 좋지 않다.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6개월(더불어민주당 안), 1년(자유한국당 안)으로 늘리면 300인 이하 사업장은 80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 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탄력근로는 교대근무 수당을 최소화한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순번일 때 비상근무 수당을 줄이는 방법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IT는 포괄임금제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대가없는 노동을 열정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주 52시간제로 초과노동을 막는 법이 시행되고, IT업계는 유연근무제를 통해 노사 합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길’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업계 요구만 듣고 이런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IT 노동자들은 또다시 대가 없는 노동을 강요받게 됐다. 노동을 존중한다던, 노사정 대화를 강조하던 정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면 노동자 목소리부터 들어 달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현장에서 주로 가전제품 수리 업무를 한다. 여름엔 에어컨을 주 제품군으로 다루게 된다. 2013년에 노동조합이란 것을 알기 전까지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여름에 주말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주말도 당연히 근무를 해야 되는 걸로 알았다, 보통 10~12주 연속 근무하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그런 것들이 도저히 참기 힘들었기에 노동조합이란 걸 만들게 됐다. 그러고 처음 여름에 주말을 알게 됐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처음 가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노동자로 살면서, 그때까진 가정을 알 수 없는, 육아는 와이프가 전담하고 가정을 돌아볼 수 없는, 돈만 버는 기계였던 삶. 그런 것들이 노동시간 축소를 요구하게 되고, 정상 근로시간을 확보하고 주말을 찾아가게 됐다. 올해 정부가, 국회가 52시간 도입을 하게 되고, 저희는 내년에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내년부터는 여름에도 저녁이 있는 삶이 올 줄 알았다.
 
(탄력근로 단위기간이 6개월 또는 1년으로 늘어나게 되면, 에어컨 수리 노동자의 경우 여름 시즌 내내 매일, 매주, 매달 초과근무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호소함.)
 
<한국공항지부>
공항 근무하는 공항근로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고 계실 거다. 탄력근로제의 위반적 계약에 저희 공항 노동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현재 탄력적 근로제도 이미 문제인데 이번에 개정된 탄력적 근로제는 공항 종사 노동자를 더 벼랑으로 내모는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특정기간을 정해 노사합의로 진행해야 할 탄력근로임에도 공항은 매월 근무스케줄을 통해 1년 내내 탄력근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의 하청업체로서 우수조합사로 품평 나 있다. 그러나 내면엔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혈을 빨리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청이다 보니 항시 대표이사는 대한항공에서 한물 간 임원들의 낙하산 바지사장으로 내려온다. 내려온 사람들이 오너일가에 잘 보이고 계열사 이익을 내려 현장 노동자들은 끼니를 굶든 손가락을 저리든 잠 못 자고 일하든 신경 안 쓰고 노동자를 노예 부리듯 부려먹는다. 법을 수없이 어기고 무시하며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았다.
 
탄력근로제로 과로사 발생도 있었다. 2017년 12월 지상 노동자가 새벽에 출근해 쓰러졌다. 지상노조 특성상 비행기 연착과 기상 상황에 따라 불규칙한 연장근로가 발생해 작업지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노동자 또한 3개월(현행법상 최대 기간)간 탄력근무를 적용하고 평균 연장근무시간이 50시간이 넘었다. 24시간 근무체계를 이유로 새벽부터 저녁 8시까지 조업시간을 지정했다.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9일이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음 근무까지 10시간 휴게해야 한다는 법 조항도 보장받지 못했다. 사내에서 2~3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조업 현장에 내몰렸다.
 
노동자의 건강권과 경제권을 무시하고 정치권이 야합해 처리하려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특정 시기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초과수당은 오히려 줄어들고,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이나 고용확대란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게 전반적 의견이다. 노동자에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탄력적 근로 제도는 하루 속히 폐기 처분해야 한다.
 

<방송스태프노조>
방송스태프로 일한 지 15년차다. 한 달 최장 일한 게 하루 20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해봤다. 올 여름 기상관측사상 가장 무더운 지난 8월 첫째 주에 30대 젊은 스태프와 또 한 명이 현장에서 일하고 집에 귀가해 돌연사 했다. 이런 젊은 스태프들의 죽음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방송사가 뚜렷한 제스처를 내놓지 않는다.
 
대화하는 척 하면서 6개월 유예됐고, 유예 뒤에 최근 대화하려고 한 분위기는 조성됐는데 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저희는 장난친 거라고 본다. 어떤 식으로 로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꼼수를 쓰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유예기간을 둔 것 같다. 저희 방송스태프는 현재도 20시간 밤을 새고 한 두 시간 사우나에 들렸다가 다시 오전 7시에 모이는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각 현장 일지를 수집해 제출할 수도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추진에 대해 개인적으로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고 힘없는 사람의 한계라고 느꼈다.
 
법을 떠나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법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 죽고 무슨 법이 필요한가. 현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291명 대상, 19.4시간 평균, 일일, 노동시간 된다. 현장인력 90%가 일용직. (정부 노동시간 단축 정책으로) 근무 일수가 줄어든 반면 시간은 늘었다. 5일간 찍던 걸 4일간 찍고, 4일간 찍던 걸 3일간 찍으면서 몰아 찍는다. 또한, 일용직이기에 일당 외엔 초과수당이 전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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