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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멜팅팟 음악’의 선구자 위켄드, ‘R&B는 거들 뿐’

프레디 머큐리처럼 관객과 '모음 대화'…고척돔 2만4000여 관객 열광

2018-12-17 18:13

조회수 : 5,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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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낫띵 릴리 매러스(Nothing really matters)”
 
미국 출신의 DJ 판다(PNDA)가 공중을 향해 드럼 스틱을 치켜드니, 리버브 효과를 먹인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이 쩌렁 쩌렁 울려 퍼졌다. 
 
스크릴렉스와 닥터 P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곡을 전자드럼으로 헤비하게 내리치며 연주한 직후.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음성이 팝아트처럼 복제되고 늘어나니 객석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원곡의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와 마지막 한 번 울리는 징 소리의 완벽 재현까지. 
 
15일 밤 서울 고척돔, 가수 ‘위켄드(Weeknd)’에 앞서 사전 공연을 연 판다는 드럼스틱을 상하로 내저으며 2만4000여 관객에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듯했다. 그는 시종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을 기반으로 팝과 록, 힙합 등 여러 갈래를 뒤섞었는데, 이는 이날 공연의 전체적인 테마를 알려주는 전조에 가까웠다.
 
지난 15일 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한 위켄드. 사진/현대카드
 
판다가 EDM을 중심에 둔다면, 캐나다 출신의 위켄드는 R&B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R&B는 힙합과 록, 일렉트로닉, 펑크 등 여러 갈래의 ‘멜팅팟 음악’을 위한 장치적 역할이다. 
 
음악계에서는 그런 그의 행로를 ‘PB R&B’란 명칭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부르고 있다. 최소 한번의 디지털 여과를 거친 드럼 사운드와 80년대 느낌을 내는 신스사운드, 감성적이고 우울한 멜로디 라인 등의 결합이 특징이다.
 
2013년 데뷔부터 이 새로운 음악들로 주목 받은 그는 그래미 어워드 3회 수상과 빌보드 뮤직 어워드 8회 수상 등 굵직한 기록의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28세의 어린 나이에도 카니예 웨스트, 프랭크 오션, 미구엘 등과 함께 ‘PB R&B’의 대중화를 견인한 아티스트로 빠짐없이 거론된다.
 
이날도 위켄드는 자신의 목소리와 R&B 뮤직을 ‘플랫폼화’ 시켰다. 비유를 들자면 힙노시스가 그린 핑크플로이드의 앨범 커버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문’의 삼각형 같달까. 위켄드라는 프리즘을 거쳐 뿜어지는 색깔들이 무지개빛 만큼이나 영롱하고 찬란했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PB R&B 가수 위켄드. 사진/현대카드
 
이날 무대에서도 미국 힙합킹 켄드릭 라마의 둔탁한 비트가 오르내리는가 하면,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펑크 특유의 멜랑꼴리한 전자음이 시시 때때로 불려 나왔다. 퓨처와 벨리, 드레이크 등 위켄드 자신이 목소리를 보탠 다른 뮤지션의 곡들도 셋리스트에 빼곡히 채워졌다.
 
빳빳이 세운 곱슬머리와 야성적인 턱수염, 올블랙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프레이 포 미(PRAY FOR ME)’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영화 ‘블랙팬서’의 OST에 삽입된 곡으로 켄드릭 라마와 함께 작업한 곡이다. 
 
이어 다프트펑크와 함께 작업한 곡 ‘스타보이(Starboy)’를 비롯해 ‘파티 몬스터(PARTY MONSTER)’, ‘리마인더(REMINDER)’, ‘식스 피트 언더(SIX FEET UNDER)’, ‘로우 라이프(LOW LIFE)’, ‘마이트 낫(MIGHT NOT)’, ‘크루 러브(CREW LOVE)’, ‘글래스 테이블 걸스(GLASS TABLE GIRLS)’ 등 총 25곡을 한달음에 내달렸다.
 
모든 곡들은 마치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 같았다. 앞 곡과 뒷 곡의 흐름이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관객들의 열광적 흥도 길게 지속됐다. 긴 레게 머리를 휘날리는 연주자들과 수십개의 명멸하는 백색 조명, TV의 지지직거리는 ‘스노우 노이즈’ 영상은 음악을 동적 에너지로 작용시켜주는 촉매제였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PB R&B 가수 위켄드. 사진/현대카드
 
 
감미로우면서도 때론 관능적이고, 끈적끈적한 보이스는 MTV가 ‘마이클 잭슨 이후 최고’라 극찬할 만한 재능이었다. ‘글래스 테이블 걸스(GLASS TABLE GIRLS)’ 때의 3번에 걸친 고음과 '언드 잇(Earned It) 때의 7~8초간의 성대 폭발에 객석은 연신 꿈틀거리며 환호했다.
 
다만 ‘목소리와 R&B는 거들 뿐’이라는 생각은 공연이 말미에 달할수록 확장되고 증폭됐다. 
 
‘오어 나(OR NAH)’에서는 ‘띠링’거리며 쭉 깔리는 신스음에서 음의 전개가 이어졌고, ‘콜 아웃 마이 네임(CALL OUT MY NAME)’에서는 전자기타가 이끄는 육중한 소리로부터 사운드가 겹겹이 쌓이며 음악이 증축됐다. 무대 위에 놓인 스크린은 함께 활약하는 연주자들을 비추기 바빴고, 위켄드는 각 악기의 연주에 마이크를 대가면서 각각의 역할을 강조하고 지휘했다. 다양한 악기와 가수의 색채가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관객들과 충분한 교감의 시간도 가졌다. “코리아, 함께 노래하자”, “풋쳐 핸접, 서울” 등 추임새를 넣거나 대표곡 ‘필 잇 커밍(FEEL IT COMING)’ 때는 직접 떼창을 유도했다. 첫 내한임에도 노래를 따라 불러주는 관객들을 향해 “서울, 아름답다. 여기 모인 여러분, 아름답다”고 외쳐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1시간 20분 남짓 공연장을 뛰어다닌 그의 마지막 인사는 관객들과의 ‘모음 대화’. 
 
“에오”를 외치며 객석과 호흡했던 프레디처럼 그는 “오오”를 그 만의 플로우로 발음하며 호응을 유도했다. 4~5개 모음을 주고 받으며 퀸의 ‘라이브 에이드’ 감동이 머릿 속에 스쳐지나갈 즈음, 마지막 곡 ‘힐스(Hills)’의 묵직한 전자 비트가 돔에 쩌렁 쩌렁 울렸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PB R&B 가수 위켄드. 사진/현대카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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