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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거문고 비비고, 기타 뒤섞고…잠비나이 ‘날 것의 음악’①

2019-02-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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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트랙 4, 기타 녹음은 어떻게 되고 있지?”
“하고는 있는데, 가사 작업도 병행 중이라. 일단 중간까지 가사는 내가 써봤거든? 다른 아이디어 있으면 알려줘. 서로 공유해 보자.”
 
지난 29일 노랑과 빨강 대형 콘테이너를 스치듯 지나치니 밴드 잠비나이의 작업실에 당도해 있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문화복합공간 플랫폼창동61, 이 곳에서 멤버들(이일우<기타·피리·태평소·정주>,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 최재혁<드럼>, 유병구<베이스>)은 곧 발매될 정규 3집에 관한 열띤 토론 중이었다.
 
2016년 이 공간이 만들어질 당시 밴드는 ‘입주 뮤지션’으로 선정됐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스튜디오실과 합주실, 녹음실을 쓸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한 소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곡 작업부터 회의, 공연까지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이 이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음악 작업 외적으로도 이 곳은 밴드에게 국내외 타 뮤지션들과 교류하는 ‘장’이다. 한층 밑에 있는 ‘RED BOX’에선 해외 뮤지션들과 직접 합동 공연을 열기도 한다.
 
“(재혁)해외 투어를 하면서 저희가 마음에 들었던 팀과 교류를 해왔고, 또 플랫폼창동 측에서 컨택을 도와 합동 공연이 성사된 경우가 있어요. 모노라는 팀과는 네덜란드의 한 페스티벌에서 직접 만나 공연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트리코어나 테라는 밴드도 있었고요. 함께 공연을 하면서 배울 점도 많았고, 밴드 방향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플랫폼창동61. 사진/뉴시스
 
이 곳에 입주하기 전까지 밴드는 서로의 ‘날 것’으로 음악적 교감을 했다. 월세 25만원에 서울대 입구 근처 무용연습홀을 빌렸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모여 음악을 해보자 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동기였던 일우와 보미, 은용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소리 구상에 빠져 있었다. 거문고부터 해금, 피리, 태평소 등 국악기부터 서양악기까지 총 동원했고 ‘비비고, 지지고’ 하면서 밴드 만의 무엇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돌이켜 보면 신뢰가 깊어질 수 있던 시간이었다.
 
“(보미)음악을 하며 함께 술을 먹는 날들도 많았는데, 당시의 시간들이 쌓여 서로의 신뢰를 두텁게 한 것 같아요.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교감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은용)각자의 날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고. 그런 기억과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밴드 잠비나이. 사진/플랫폼창동61
 
그렇게 3인조 편성으로 낸 셀프타이틀 EP ‘잠비나이(2010)’는 ‘날 것’의 음악이었다. 기존 퓨전국악의 어법과는 다른, 거친 노이즈나 기발한 타법이 적극 도입된 ‘신음악’. 거문고와 해금, 기타가 헤비하게 뒤섞인 소리는 음악적 경계를 재창조한 하나의 실험에 가까웠다. 
 
“(일우)그때는 지금처럼 어떤 음악을 해보겠다는 것도 없었고, 그냥 이런 저런 악기들을 가져와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이었어요. 딱히 우리만의 심볼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리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앰비언트 음악 같은 느낌도 있긴 했지만, 지금 와서 냉정하게 말하면 지루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리듬감을 잡아주는 악기들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후 낸 1, 2집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추가하면서 자연스레 음향적 고민이 깊어졌다. 서양악기의 비중이 확대되다 보니 국악기와의 소리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5명의 연주가 하나의 소리 물결이 되려면 각 악기가 치고 빠지는 순간, 순간이 고려돼야 했다. 
 
“(은용)국악기들은 어쿠스틱이다 보니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고민해야 하는 점이 있어요. 공연 때에도 다른 소리들을 뚫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플레이를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소리들을 더 섬세하게 잘 듣게 되기도 해요. 어떤 때는 멤버들 호흡소리도 들리는데, 점점 앙상블화된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일우)실제 공연에서는 기타, 드럼, 베이스 같은 경우 소리가 (앰프를 통해) 증폭돼 크게 나오지만 국악기 소리들은 그렇지 않기에 배치도 앞 줄에 하곤 하죠. 녹음 때에는 오랫동안 같이 해온 몰 스튜디오 조상현 감독님이 서포트를 너무 잘해주셔서 밸런스가 잘 맞게 나와요.”
 
지난 1월29일 플랫폼창동61에서 만난 밴드 잠비나이. 사진/뉴스토마토
 
곡 구상 단계는 멤버들 개개인의 생활에서 이뤄지곤 한다. 일우가 곡을 쓰면 멤버 각자가 뼈대를 만드는 식이다. 그리고는 이 곳에서 아이디어를 이어 붙이고 살을 찌운다. 각 악기의 전통 주법을 따르지 않는, 일우 만의 창의력은 멤버들에게 늘 자극이 되는 편이다.
 
“(은용)잠비나이의 거문고를 연주하다 보면 공부가 많이 돼요.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정박에 맞춰 연주하는 트레이닝이 부족한데, 그 부분에서 많이 훈련이 됐거든요. 평소 거문고의 전통적인 기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잠비나이를 하면서는 거문고 만의 다양한 소리를 찾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 안의 한계를 깨지 못했을 거에요.”
 
“(재혁)일우가 찍어온 드럼도 들어보면 굉장히 독특해요.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최대한 맞춰서 하다 보면 제 안에서 독특한 플레이가 나오더라고요. 제 식으로 바꾸면 분명 뻔해질 음악들인데, 알게 모르게 발전되는 것 같아요.”
 
“(은용)요즘에는 일우가 아예 거문고까지 직접 연주하고 녹음해와요. 직접 들어 보면 이런 소리는 어떻게 내지, 하는 생각도 많이 하면서 타법 고민도 많이 하게 돼요. 국악계에서 아마 개방현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은 이일우씨가 아닐까…”
 
듣고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자 “해금도 연주하라!”라며 보미가 분위기를 더 밝게 만든다. 
 
“(은용)연주자 입장에서는 나약해지고 그럴 수도 있는데, 항상 긴장감을 만들 수 있는 곡들을 써줘서 고맙죠. 재미있기도 하고요. 매번 점점 더 성장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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