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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연구 기준점 될 것" 미국서 돌아온 조선왕실 백자·인장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중화궁인' 국내 환수

2019-06-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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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얼마 전 화재에 휩싸인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다들 보셨을 겁니다. 수천년 지켜오던 문화재라도 그렇게 한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날 수 있습니다."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우리 문화재, 고국의 품에 안기다' 언론공개회. 정재숙 문화재청 청장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들어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으로 행사를 열었다. 이날 조선 왕실의 백자와 인장의 국내 환수 발표를 앞두고 그는 "문화재는 우리의 얼굴이며 우리 자신이라 생각한다"며 "오늘은 조선왕실 유물 중 아주 희귀한 가치를 지닌 두 문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조선왕조 유물인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와 '중화궁인'의 국내 환수에 성공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경매에 출품된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견, 글로벌 게임사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하는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기금을 활용해 매입했다.
 
'중화궁인'(좌측)과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 사진/라이엇게임즈
 
두 유물 모두 궁(宮)자가 들어가는데, 궁은 왕실 가족이 쓰는 공간에 붙는 명칭이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주거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는 조선 19세기 왕실·관청용 도자기 제조장인 분원 관요에서 제작한 백자 항아리다. 높이 10.2cm로, 미국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지난 3월19일 낙찰에 성공해 들여왔다. 바닥면에 정조 딸이자 순조의 누이 동생인 숙선옹주(1793~1836)의 궁으로 추정되는 푸른색의 '이동궁(履洞宮)'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동(履洞)은 현재 서울 을지로 3가 명보아트홀 근처의 한 지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경화 서강대 전인교육원 강사는 "조선시대 백자들은 전부 18세기, 혹은 19세기 정도로만 구분되기 마련인데 이 항아리의 경우 명문에 적힌 '이동궁'을 통해 구체적인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이 항아리를 중심으로 양식의 선후 배열을 하다보면 조선시대 도자사 양상과 흐름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도자사 연구의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최경화 서강대 강사에 따르면 조선 후기 서적인 '명온공주방상장례등록'과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에 이동궁이 등장한다. '명온공주방상장례등록'에는 "이동궁에서는 진홍 공단 한 필, 초록 공단 한 필, 무명 이십 필, 베 삼십 필이 왔다"고 적혀 있다. 순조 장녀인 명온공주가 1832년 세상을 떠난 후 이동궁에서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는 내용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숙선옹주 남편인) 홍현주 집이 이전동(履廛洞)에 있는데, 외당(外堂·사랑채)에 금옥당(金玉堂)이라고 전자로 현판을 써서 걸었다. 순조 어필(御筆·임금 글씨)로 원정(園亭)이라 썼으며, 시림정(市林亭)은 익종(효명세자) 어필이다"라고 쓰인 대목이 있다.
 
최경화 서강대 강사는 "임금 글씨가 써졌던 집이면 궁가 중에서도 위상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숙선옹주가 혼인한 1804년 이동궁이 조성됐고, 이 시기를 백자 제작 상한연대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백자의 바탕이 되는 흑을 태토라고 하는데, 그게 굉장히 치밀하다. 또 유약 표면에 자잘한 균열을 일컫는 '유병렬' 같은 것도 하나도 없다"며 "기술적으로도 최고 수준에 이른 조선시대의 백자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설명을 더했다.
 
'중화궁인(좌측)'과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 사진/라이엇게임즈 
 
이날 백자와 함께 왕실 개인 인장으로 보이는 '중화궁인'도 공개됐다. 지난 3월20일 미국 본햄스 뉴욕 경매에서 구매해 국내로 송환했다. 
 
가로, 세로 7.2cm에 높이 6.7cm의 크기며, 손잡이가 서수(상서로운 짐승) 모양으로 조각돼 있다. 도장을 찍는 면인 인면(印面)에는 전서(篆書·조형성이 강한 중국 옛 서체)와 해서(楷書·정자체)를 혼용한 '중화궁인'(重華宮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화궁'은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지구관청일기'에 등장한다. 특히 고종11년(1874년) 쓰인 '지구관청일기'에는 "외대문 파수군 중 아홉 명을 뽑아서 중화궁 서문에 파수시키라는 하교를 받았다"고 서술된 대목이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책 '당시품휘'에는 '중화궁인'의 인장 크기와 모양이 일치하는 도장 흔적도 존재한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화궁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어디인지 추정하긴 힘들지만 창덕궁 인정전 영역의 동쪽 정도에 있던 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시기 역시 명확하진 않지만 정조에서 고종대로 추정하고 있다"며 "태평성대는 계속된다는 의미로 중국에서도 이 중화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를 당시 조선이 들여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송환된 덕온공주 인장과 비슷한 인장으로, 국내 소장 사례가 많지 않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도 분석했다.
 
두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보존할 예정이며 향후 연구, 전시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라이엇게임즈는 5년 전부터 국외에 떠도는 국내 문화재들을 환수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2014년 석가삼존도, 2018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올해 4월 척암선생문직 책판 환수에 성공했다. 
 
정재숙 문화재청 청장은 "라이엇게임즈는 문화재 환수에 앞장서는 으뜸 기업"이라며 "앞으로도 문화재 지킴이들과 국외에 떠도는 문화유산들을 들여와 향후 5000년, 1만년을 밝게 빛나게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문화재, 고국의 품에 안기다' 언론 공개회 현장. 지병목 국립고궁박물관장(왼쪽부터), 정재숙 문화재청 청장, 박준규 라이엇 게임즈 한국 대표,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사진/라이엇게임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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