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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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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홍콩시위)민간인권진선 "'홍콩은 홍콩' 존중 않으면 시위 계속"

2019-09-05 00:24

조회수 : 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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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1일부터 9월1일까지 홍콩 현지에서 홍콩시위를 취재했다. 홍콩시민들은 당국의 '범죄인 인도법' 제정에 반대하고자 6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주는 13번째 시위였다. 이번 취재엔 경희대 미래문명원 임채원 교수가 동행했다. 임 교수는 한국에서 '우산혁명을 지지하는 촛불시민연대'를 이끌고 있다. 임 교수를 통해 홍콩시위를 주도하는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 이하 민진)과 만날 수 있었다. 1일 샤텐역 인근에서 만난 웡윅모(黃奕武)씨는 민진의 부대표(홍콩에선 副召集人으로 표기)로, 조직 내 인권조(人權組, Human Right Group)를 담당하고 있다.

*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캐리 람(Carrie Lam, 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 제정을 공식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홍콩의 정치적 갈등이 마무리 된 건 아니다. 시위도 끝난 게 아니다. 시위대가 요구하는 건 범죄인 인도법 철회를 포함해 △경찰 강경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등 이른바 '5대 요구(五大訴求)'다. 시위대는 "五大訴求 缺一不可(5대 요구 중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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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열정적, 성적소수자'. 웡윅모씨(사진)를 설명하는 세가지 키워드다. 그는 시위의 최전선에 설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33살의 청년이며 성적소수자이기도 하다. 세 키워드로 그려지는 웡의 모습은 홍콩시위의 속살을 상징한다. 시위의 표면적 명분은 당국의 범죄인 인도법 제정 반대다. 하지만 실제는 중국의 일당독재와 억압, 노골적인 '하나의 중국' 기조에 맞서서 완전한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홍콩 신세대들의 저항이다.



"경찰이 먼저 폭력…대응 일관성 없고 신뢰 못해"

웡을 만나선 우선 전날 벌어진 홍콩시위에 관해 물었다. 웡은 전날 저녁 경찰이 코즈웨이 베이역의 빅토리아파크까지 와서 시민들과 대치했고, 총소리도 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보여줬다. 거기엔 경찰이 시위대를 지하철역으로 몰고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웡은 시위에 대한 홍콩 당국의 대응이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간다고 걱정했고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을 질타했다.

그는 "한달 전까지만 해도 부드럽게 진행된 시위였지만 당국의 대응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면서 "6월 이후 시간 지나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오고 시위 규모가 커지자 경찰이 먼저 시민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국엔 시위 대응에 관해 규정된 절차가 없고 그래서 일관성도 없다"면서 "경찰을 지휘하는 당국의 태도로 봤을 때 폭행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국이 시위대를 회유하고자 여러 제안을 했지만 웡은 그들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당국엔 매뉴얼과 절차가 없기 때문에 제안도 신뢰할 수 없다"며 "우리는 입으로만 하는 약속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경찰의 대응을 불만이 많다"면서 "시위가 있는 날엔 시내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시위대 때문이 아니라 경찰이 쏜 최루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시위를 주도하는 민진은 홍콩 민주주의 단체와 좌파 정당,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민주파들이 2002년 결성한 연합조직이다. 민진은 홍콩 민주화의 중요 사건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곳 대표(홍콩에선 召集人으로 표기)는 지미 샴(jimmy Sham, 岑子杰)이다. 그는 1987년생으로 홍콩 내 반중성향 조직인 사회민주연선(社會民主連線) 소속이다. 웡은 샴도 성적소수자라고 전했다. 또 민진은 크게 인권조와 경권조(警權組, Police Montoring Group)로 나뉘며, 각 조에는 직능별 세부조직이 있다고 했다. 총 인원은 50명 정도다.

홍콩시위엔 젊은이들이 주로 참여한다. 한국의 촛불시위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유모차 부대까지 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홍콩시위에 직접 참여해보니 어르신들의 모습은 드물었다. 웡은 홍콩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드러난 결과라고 전했다. 그는 "홍콩시위엔 한국과 다르게 학생들과 여성들의 참여가 대부분"이라며 "현재 홍콩 상태라면 우리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기 때문에 경찰과 싸운다"고 말했다. 웡은 "우리가 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왔지만 예전처럼 공부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호소했다.

홍콩의 2030세대는 당국과 경찰,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중국 공산당이 두렵지 않은걸까. 실제로 31일 시위 직전 홍콩 경찰은 시위 주도자인 조슈아 웡(Joshua Wong, 黃之鋒)과 아그네스 초우(Agnes Chow, 周庭) 등을 전격 체포했다. 민진 대표인 샴은 괴한으로부터 백색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웡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공개적으로 시위를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홍콩은 원래 매우 안전한 곳이었고 불과 2년 전까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리칠 수 있는 사회였는데, 이젠 전부 바뀌었다"고 했다. 또 "내 지인은 시위 때 쓸 포스터를 들고 가다가 습격 받기도 했다"면서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갔고 지금도 계속 약을 먹고 있으나 언론에선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홍콩 존중해야…'10월1일' 고비"

웡은 시위의 목적과 홍콩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우리는 홍콩 사람이고, 홍콩은 홍콩(Hongkong is Hongkong)"이라고 밝혔다.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뜻대로만 하는 곳이 아니라 홍콩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가진 홍콩 그 자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정치체제 등에선 아직 모르겠지만 홍콩은 중국과의 분리가 이상적"이라고 부연했다. 또 "홍콩의 높은 경제력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것으로,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조금 더 존중해주길 원한다"며 "행정장관 선거는 직선제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의 정부수반으로 현재 장관은 2017년부터 재임 중인 캐리 람이다. 과거 홍콩이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땐 영국 국왕이 홍콩의 수장이고, 현지 총독이 다스렸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금은 중국 국가주석이 명목상 홍콩의 최고 수장이다. 단, 주석은 홍콩 내정엔 직접 관여하지 않고 행정장관이 자치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장관이 시민의 직접선거 대신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된다는 점이다. 행정장관 선출이 민심보다 공산당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탓에 행정장관 직선제는 홍콩 민주화의 선결과제로 꼽힌다. 앞서 2014년 벌어진 홍콩 우산시위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작됐다.

홍콩시위는 주말 집회를 계속 이어가는 가운데 오는 10월1일은 시위대와 홍콩 당국 모두에게 고비가 될 전망이다. 10월1일은 중국의 국경절인데, 1949년 이날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올해 국경절 70주년이기도 하다. 웡은 "10월1일엔 우리도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구체적 방법 등은 논의하는 중"이라고 전했지만 대규모 집회 가능성을 피력했다.

홍콩 당국과 중국 공산당으로서도 10월1일이 갖는 상징성 탓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어떻게 대처할지가 주목된다. 시 주석이 '하나의 중국'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발표할지, 홍콩시위를 불허하고 더 강경한 대처를 주문할지, 홍콩시민과 민진이 원하는 대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허용할지 등이 관건이다. 웡은 홍콩 당국과 중국 공산당에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시위대가 시위를 계속할지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웡은 특히 "'비폭력 시위' 계속은 당국 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강경·폭력 대응의 수위를 높여간다면 시위대가 고수한 비폭력 평화시위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제사회 손길 필요…한국에서 지지·방문 해주길"

웡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을 통해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지지를 요청했다. 또 시위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현지에 방문해주길 바랐다. 그는 "홍콩시위가 지속될 수 있는 건 국제사회의 관심이 덕분”이라면서도 “지지와 관심도 중요하지만 여기 와서 시민 이야기를 직접 듣고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심각성을 알아달라"고 전했다. "

웡이 국제사회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는 건 중국 공산당의 감시와 통제 탓에 홍콩이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홍콩시위에 관해 중국 내 일부와 대만 시민단체 등과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대부분 중국인들은 홍콩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데, 언론에서 거짓으로 소식을 보도하고 교육시키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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