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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뉴스리듬)20세기 '피카소의 대항마', 베르나르 뷔페

2019-09-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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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세기 비운의 천재, 피카소의 대항마'. 프랑스 출신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를 일컫는 말입니다.
 
국내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 그는 1950년대 70대의 거장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화가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공포와 혼돈을 견디며 삶과 죽음의 질문을 던지고, 독특한 직선과 음울한 무채색으로 표현했던 구상회화의 선구자. 그의 시대 반영 그림들은 프랑스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파리 정부와 평론가, 동료 미술가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온갖 협잡으로 명성은 바닥까지 추락했고, 당대의 주류였던 '추상미술'에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 비운의 화가를 재조명하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미술사에서 비중있게 다루지 않던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그의 단독 회고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뷔페의 초년부터 노년까지 전시 동선을 짜며 그의 삶과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빳빳한 직선으로 그려진 무채색의 생기없는 정물들이 보입니다. 1948년 뷔페가 15살 때 그린 그림들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은 이 소년의 삶을 통째로 쥐고 흔들었고, 죽음에 대한 질문을 품게 합니다. 제목이 '장례식'인 작품에서 그려진 관 모양은 당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줍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뷔페는 생에 최악의 슬픔을 겪게 됩니다. 뇌종양이 발견된 어머니가 3일 만에 그의 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형은 징집되고, 아버지는 불륜으로 집을 떠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18세 때 출품하는 빳빳한 직선의 무채색 그림들은 프랑스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추상회화와 정반대로 사물 자체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구상회화의 가능성은 그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1950년대 그가 프로방스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색깔이 점점 다채로워집니다. '팔을 괸 여인'과 '와인 한잔, 그리고 여인' 등의 작품을 보면 배경의 색들이 전보다 화려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피카소와 견줘지기 시작하고, 미 뉴욕타임스로부터는 '프랑스는 뷔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인물들은 여전히 딱딱한 직선형태로 묘사되며 눈의 초점이 나가 있거나 무표정으로 그려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죽음의 공포와 고통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화두였습니다.
 
50년대의 명성으로 그는 부를 얻습니다. 28살에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하고 롤스로이스를 타며 성을 통째로 사서 그 안에서 삽니다. 자신과 비슷하게 유년시절 부모님을 잃은 평생의 뮤즈 아나벨과 진실된 사랑도 나눕니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성공을 시기한 당대 미술계는 그를 철저히 고립시킵니다. 시대적 흐름인 추상화를 그리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대중들은 평론가와 정부에 선동돼 그를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구상주의를 지키며 자신 만의 그림 문법을 완성해갑니다. 
 
'오디세이-사이렌', '해저 2만리 노틸러스호의 거대한 현창'. 80년대 후반 노년에 그려진 뷔페의 그림들입니다. 세르반테스나 쥘 베른 같은 유명 작가의 소설 모티프를 차용했습니다. 직선으로 그려온 그림 인생 전부를 소설에 섞어 풀어냈습니다. 90년대 후반 파킨슨 병에 걸리는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들을 남깁니다. '난파된 배'와 '죽음 시리즈' 맨 마지막 그림 '해골' 등이 자신의 자화상처럼 등장합니다. 평생 그림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질병 때문에 그림을 못 그릴까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림은 그의 목숨과도 같기 때문이었죠. 99년 손을 떨며 마지막 해골그림 24점을 남긴 후 그는 결국 작업실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죽음 직전에 남긴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땐, 한국 작곡가가 지은 곡 '베르나르 뷔페를 위하여'가 전시장에 조용히 울려 퍼집니다. 이렇듯 전시는 그의 삶 전체를 회고할 수 있도록 구성이 돼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뷔페 전은 20세기 미술 사조와 당대의 시대적 배경, 뷔페의 생과 작품 가치를 다시 보게 합니다. 전시는 오는 9월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이어집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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