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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대학가요제와 단편 드라마의 강제적 숭고성

2019-10-08 17:40

조회수 :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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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는 1977년 첫 회를 시작으로 2012년까지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장장 36년이란 세월동안 대중과 함께한 가요제였습니다. 신해철, 김학래, 전수경, 배철수, 노사연, 심수봉, 유열, 김동률 등 우리에게 친숙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대중과 만났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대학가요제’는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2005년 EX의 ‘잘 부탁드립니다’ 무대가 제 마지막 ‘대학가요제’ 본방 사수였습니다.
 
2012년, 폐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래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무대를 대중이 외면한다는 이유로 폐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폐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유야 정말 많았습니다. 대학생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었고, 신선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은 가요제 외에도 많았으며, ‘음악으로 경쟁한다’는 콘셉트의 예능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학가요제’는 올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난 5일 본선 무대가 열려 8000여 명의 관객이 운집했습니다. 가요제 주최사에 일하던 지인이 최근 저에게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갑작스레 ‘대학가요제’를 담당하게 됐거든요. 그는 “이거 한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고 투덜거렸습니다.
 
그저 의미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폐지된 무언가를 부활시키는 것. 방송계에는 단편드라마, 단막극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과거에는 신인 작가, 신인 배우의 등용문이었습니다. 배용준, 김혜수 등 지금은 거물급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도 단막극 출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꾸준히 하락했고 폐지됐습니다. 대신 가끔씩, ‘특별기획’과 같은 타이틀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다시 ‘대학가요제’ 이야기로 넘어가서, 올해 대상은 ‘너만이’로 무대를 꾸민 펄션이 차지했습니다. 유튜브에서 그들의 무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타를 튕기며 가성과 진성을 넘나들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예전의 그 짜릿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들의 무대를 보면 여전히 ‘대학가요제’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케케묵은 이야기입니다. 오래되어 의미가 있는 것. 이런 것들은 강제적으로 숭고성을 지니게 됩니다. ‘대학가요제’도 단막극도 사실 대중이 외면하는 컨텐츠들입니다. 저도 이걸 숭고하게 보자는 건 아닙니다. 그냥 가끔은 봐주면 재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tvN ‘드라마스테이지 2019’의 ‘인출책’을 한번 찾아 보시길, 그리고 펄션의 ‘너만이’ 무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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